↑ '한산'에 임하며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박해일. 사진I롯데엔터테인먼트 |
박해일은 영화 '한산' 개봉을 앞두고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인사 대신 시 한 편을 읊었다. 그러고는 “(내가 읊은 시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글을, 더군다나 시를 썼다더라. 그 치열한 전쟁 속에서도”라며 자신이 맡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첫 인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한산'은 2014년 7월 개봉해 무려 1761만명을 동원해 역대 한국 영화 최고 기록을 세운 ‘명량’의 후속작이자 프리퀄이다. 김한민 감독이 기획한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 중 두 번째 작품인 '한산'은 명량해전이 발발하기 5년 전, 당항포 해전 이후 약 한 달간 한산해전이 일어난 후일까지를 담는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수많은 전투 중 최초로 압도적 승리를 거둔 한산해전을 장엄하고 압도적인 규모로 그려냈다.
↑ '한산'에 임하며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박해일. 사진I롯데엔터테인먼트 |
박해일은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장수가 시를 쓰더라. 그것은 충격이었고, 그것이 곧 나의 이순신을 만드는데 뼈대가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땐 '왜요?' '제가 장군감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나는) 용맹스럽고 남성미가 넘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기에 의아했고 당황스러웠다”면서 “다행히 내가 표현해야 하는 건 (이순신의) 지략가적인 면모, 지혜롭고 주도면밀한 부분이었다. 그러다 이 장군이 쓴 글들을 읽으며 큰 영감을 받았고, 내내 스스로를 의심하고 고뇌하고 되짚어 보는 걸 반복하면서 완성해나갔다. 우리 모두가 가졌던 어떤 소명 의식이나 경외심 등의 마음도 큰 힘이 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그런 감정에 과몰입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면서 굉장히 절제하려고 노력했다. 수시로 감독님께 물어보고, 스스로 체크하면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 '한산' 이순신으로 분한 박해일. 사진I롯데엔터테인먼트 |
박해일은 “감히 그런 현실적인 측면은 생각할 여유가 아예 없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누가 되지 않게) 연기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명확하게 형언할 수 없는 그 묵직한 무언가를 덜어내야 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알면 알수록 나는 초라하기만 했다. 그 간극을 어떻게 좁히고 채워 나가야 할지 혼란스럽고 힘들었다”고 오롯이 이순신에 빠져 지냈음을 드러냈다.
“감독 님이 역사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결정적인 동력이 안 됐어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수양을 많이 쌓은 군자이자 도인 같은 느낌이 있다는 자료를 찾아 마음의 수양부터 했죠. 동네 절에도 가고 염불 소리도 들으면서요. 촬영이 시작돼서도 숙소에서 자세를 똑바로 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첫 촬영이 가장 어려웠단다. 극 중 대립각을 세우는 변요한을 비롯해 안성기 손현주 등 신구 대표 배우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말 한마디, 찰나의 표정, 자세조차 너무 예민해지더라고요. 무거운 갑옷을 입고 한여름에 판옥선 위 장로에서 지휘하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는데 부담감이 너무 컸던 나머지 정말 어깨가 무거웠어요. 같은 작품을 해왔던 스태프, 동료 배우들의 조언과 함께 나눴던 호흡을 통해 아주 서서히 풀려나갔죠. 제가 보여주고자 했던 연기, 생각하고 원했던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기분이 조금씩 들면서 스스로도 출항하는 기분이었어요.”
박해일은 "'명량'과 '한산'은 다른 톤의 작품”이라며 “'한산'은 이순신 장군이 드러나는 장면도 중요하지만 안 드러날 장면에서도 그의 전법과 첩보전이 보이길 바랐다. 안 보이는 곳에서도 이순신의
더불어 “최민식 선배가 불의 기운으로 뻗어 나갔다면, 나는 물의 기운으로 포용하면서 모든 배우가 다 잘 보일 수 있도록 끌고 가고자 했다. 원했던 방향대로 작품이 완성된 것 같아 기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인터뷰②에 계속)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