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프 겸 모델 오스틴 강. 사진|강영국 기자 |
“난 패션 테러리스트예요.”
이 남자. 한 눈에 봐도 ‘비주얼 덩어리’인데 첫마디부터 셀프 디스다. 188cm의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얼굴. 모델 출신이라고 하니 더 이상의 외모 찬사는 접어두자. 유연한 듯 강단 있고, 진지하면서도 쾌활하다. 꽤 솔직하고 털털한 화법.
“친구들이 혼자 절대 쇼핑하지 말래요. 맨날 거지같이 입는다고요. 하하. 트렌디한 스타일을 입으면 전 이상하게 바보 같아 보여요. 오늘 이 옷도 (인터뷰를 위해) 새로 산 건데, 잘 어울리나요?”
오스틴 강(28·강민주). 셰프 겸 모델로 요리와 패션을 넘나들고 있다. 한국어가 서툴다는 사전정보와는 달리,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어깨깡패 같다’는 인삿말에 “요즘 신기한 한국말은 여기에 적는다”며 앙증맞은 수첩을 꺼내들며 웃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엔 한국 학생이 4명 밖에 없었어요. 다들 미국인이거나 중국인들이었죠. 한국말 배울 기회가 없어서 5년 전 여기 올 때만 해도 거의 못했어요. 레스토랑 주방에 막내로 들어가 혼나면서 일했는데 그때 많이 배웠죠. 친구들(헨리, 에릭남 등)과 기타 치고 놀면서, 데이트 하면서도 많이 늘었고요.(웃음)”
↑ 방송으로 보폭을 넓히는 오스틴 강은 여전히 "요리가 메인"이라고 말했다. 사진|강영국 기자 |
“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는 그는 5년 전 홀로 한국에 왔다. 잠깐 영어강사로 일했으나 그의 표현대로라면 “퓨처(미래)가 없어” 그만뒀다. 두달간 빈둥빈둥 놀다 주머니에 달랑 20만원 남았을 때 치열하게 앞날을 고민했다. 문득 멕시칸 음식을 좋아하던 자신이 떠올라 운명적으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후 압구정과 한남동 레스토랑에 들어가 미친 듯이 요리를 배웠다. 그가 들어간 레스토랑은 6개월간 막내 5명이 도망갔을 정도로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유명했던 곳.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일했어요. 하루 16시간을 일했는데 쉬는 날도 없이 요리 연습만 했죠. 그래도 힘들지 않았어요.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 요리를 시작했고, 요리를 하면서 ‘위안’을 얻었거든요. 요리는 제게 ‘휴식’인 동시에 ‘즐거움’이었습니다. 요리하면 나쁜 생각도 없어졌어요.”
2016년 우연히 출연한 올리브TV ‘마스터 셰프 코리아4’(2016)는 그에게 ‘신세계’를 열어줬다. 당시 남자 도전자로는 유일하게 준결승에 진출, 훈남 셰프로 단박에 주목받았다.
“친구 헨리(가수)가 대신 지원서를 써줬어요. 어느 날 ‘넌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냐’며 방송에 나가보란 거예요. ‘아니, 난 아직 많이 배워야 돼’하고 거절했는데 어느 날 작가님이 면접 보자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그렇게 얼떨결에 나가게 됐는데 가족과 친구들 생각하며 열심히 했더니 운 좋게 준결승까지 가게 됐어요.”
↑ 모델 출신 셰프 오스틴 강. 사진|강영국 기자 |
“맥주 광고 촬영장에서 만났는데 생각보다 더 나이스 했어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얘길 나눴거든요. 사실 요리사는 몸도 쓰고 머리도 쓰는 직업이라 3개월, 6개월에 한번 슬럼프가 와요. 고든 램지에게도 이 부분을 물어봤는데 ‘너 자신을 즐겨라’고 하더군요.”
올 2월엔 요즘 말로 ‘대박 사건’이 있었다. 미국 대륙 전역에 방송되는 NBC '투데이 쇼'에 출연해 한국의 음식문화를 알린 것. ‘투데이쇼’는 1952년 방송을 시작한 이후 미국 아침 간판 TV 쇼다. 한국인으로는 ‘강남스타일’의 싸이와 여자 골퍼 박인비가 출연한 정도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춰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코너가 마련됐는데, 영어가 능통한 오스틴 강을 섭외했던 것.
“섭외 요청 받고 ‘이건 무조건 해야 해’ 했어요. 그래서 유명 브랜드 광고도 거절하고 이걸 찍었어요. 맨해튼 전광판에 예고편이 나왔는데 친구들이 인증샷 찍어 보내주기도 했죠. 부모님도 생방송 캡처 사진을 바로 찍어 보내줄 정도로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날 한국식 양념치킨과 소맥을 설명하면서 한식문화를 알렸는데 반응이 좋아 한 번 더 출연했어요. 저에겐 엄청난 행운이었고 신의 한수였죠.”
↑ 오스틴 강은 美 NBC `투데이쇼`에 출연해 치맥 등 한국 음식문화를 알렸다. 사진|강영국 기자 |
“아직 준비가 덜 됐어요. 지금은 테스팅 단계라 생각해요. ‘엘레브’는 프랑스어로 학생이란 뜻인데, 배우고 싶다는 제 의지를 담은 거죠. 레스토랑으론 사실 돈 못 벌어요. 아침 5시에 일어나 새벽시장 가고 오전 내내 준비하고 오후 5시에 오픈해 새벽 1시까지 일해요. 쉬는 날도 없죠. 그래도 벽만 보고 일 해도 행복해요.”
요리에 푹 빠져있는 그에게 예능 프로그램 제의가 왔다. 국내 최초로 게임을 원작으로 한 MBC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다. 가상의 세계 두니아에 떨어진 10명의 출연자들이 만들어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마이리틀텔레비전‘의 박진경, 이재석 PD가 연출한다.
출연진도 쟁쟁하다. 유노윤호, 정혜성, 권현빈, 루다, 샘 오취리, 돈스파이크, 구자성, 한슬, 딘딘 등 10명이다. 그는 여기서도 ‘셰프’로 출연한다. 본격 방송 데뷔작인 동시에 터닝포인트가 될 기회다. 기분은 어떨까.
“진짜 럭키하게 생각해요. 특별히 준비하는 건 없고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요.(웃음) 그때 내 방송(마스터셰프)도 안 봤어요. 창피하기도 했고 괜히 내 행동이나 외모를 바꾸려고 애쓰게 될까봐 안 봤어요. 이번에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려고 해요. 전 집에 TV도 없는 걸요.”
오스틴 강은 세상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
“전 연예인이 아니에요. 요리가 메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방송도 요리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해 하는 거예요. 요리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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