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때때로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그저 당연한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권태 속에서 문뜩 외롭다고 느껴질 때 슬슬 엄한 곳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첫 죄악을 저지르고 나면 그 다음은 쉬워진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짜릿한 쾌감, 그 뒤에는 반드시 더 큰 허무함이 찾아온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버스가 떠난 뒤 뒤늦게 하찮게 여긴 일상의 행복을 주워 담으려고 할 땐 이미 늦었다. 권태로움? 외로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허탈감과 회한이 남은 인생을 잠식할지도 모른다. ‘바람 바람 바람’의 누군가처럼.
영화 ‘바람 바람 바람’(감독 이병헌)은 20년 경력의 베테랑 카사노바 석근(이성민 분), 순진하고 소심한 매제 봉수(신하균 분)와 그의 아내 미영(송지효 분)앞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제니(이엘 분)가 나타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성인 코미디물.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리메이크 했다.
완전히 서로 다른 캐릭터들의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웃기다가도 슬프다. 한심하면서도 어딘가 짠하고 인정하긴 싫지만 공감이 가기도 한다. 밉지만 결코 밉지 않고, 통쾌하면서도 어이가 없기도. 여느 코미디물에서는 접한 적 없는 입체적이고도 복잡미묘한 오묘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가볍게 다루는 듯하지만 ‘불륜’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옹호가 아닌 반어적인 경고로 풀어나가는, 기발하고 똑똑한 감독의 연출은 신선하고도 센스가 넘친다.
황홀한 일탈을 경험한 주인공들의 표정을 보라. 감독이 이 철부지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 일회적 일탈과 헛된 욕망에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과연 있을까. 불륜, 그 짜릿하고 달콤한 이면 뒤에 숨은 잔혹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4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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