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넘고 나니, 새삼 ‘우리 사회가 너무나 살기 힘든 구조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집값은 너무 비싸서 아무리 모으고 모아도 집 구하긴 힘들고, 어느새 친구들은 다 사라지고…제 고민들을 한 데 모아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했죠. ‘나만 힘든 게 아니지 않나’라는 질문과 공감을 나누고 싶었어요. -‘소공녀’ 전고운 감독”
지난 12일 광화문시네마의 신작 ‘소공녀’(감독 전고운)이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지난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상,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는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현대판 소공녀 ‘미소’(이솜)의 일상을 담담하고도 날카롭게 담는다.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 유니크한 그녀의 특별한 여행은 가히 암담한 현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새해가 되자 집세도 오르고 그녀가 사랑하는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올랐지만 일당은 그대로다.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비싸지는 세상에서 그녀가 포기한 건, 바로 ‘집’이었다.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와 온갖 주거 건물들 중에서도 미소가 마음 편히 발 뻗고 살 수 있는 방 한 칸이 없는 서울. 어릴 적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자신만의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
한때 모든 것을 나누었던 친구들. 그러나 각박한 현실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그녀의 존재를 반기지만은 않는다. 미소는 그저 서로에게 작은 공간이, 위안이 돼주길 바랄 뿐이지만 친구들은, 그리고 화려하고 에너제틱한 도시 서울의 이면은 어둡고도 차가울 뿐이다.
영화는 유니크한 캐릭터와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씁쓸한 서울의 낭만을 담은 몽환적인 영상미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 무거운 현실을 날카롭게 담아냈지만 재미와 긴장을 교묘히 넘나드는 이야기의 힘으로 높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한 ‘미소’의 친구들 중 한 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부정할 수 없는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진한 여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 집이 없다는 사실 하나를 빼고는 누구보다 깨끗하게 집을 청소하고 관리하며 친구들에게 정성스레 밥을 차려주고 예의 바른,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확고한 가치를 살아가는 미소의 모습은 우리 내면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차별을 깨트리기에 충분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아버지의 실종 이후 순식간에 하녀 신세로 전락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우아하고 착한 내면을 유지하며 역경을 이겨내는 소설 ‘소공녀’의 주인공 세라가 자연스레 떠오르며 왜 감독이 작품의 제목을 소공녀로 지녔는지를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시대의 미소, 그리고 미소의 친구로 살고 있는 우리들, 혹은 그 가운데서 갈팡질팡 중인 모든 청춘들을 위한 영화다.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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