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송중기 소지섭 이정현 등 강제 노역 조선인들의 삶을 향한 사투는 처절하다. 후반부 하시마 섬 군인들과 격전을 벌이는 상황은 긴장의 최고치를 끌어낸다. 이 탈출 시퀀스는 살아나가고자 하는 조선인들의 의지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영화 '군함도'의 하이라이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중요한 부분에서 쌓아놓은 감정이 폭발하지 않기도 할 듯하다. 고생했던 수많은 조선인의 염원이 담겨있기에 손뼉 쳐야 하고 눈물이 날 법한데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통쾌한 기분을 느낄 지점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군함도'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 하시마 섬에서 석탄 채굴을 위해 조선인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키며 자행된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면서, 그 만행을 가능하게 했던 일부 조선인들의 욕심과 방조 등에도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 우려하던 '국뽕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권력자에게 붙어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던 조선인들, 실제 친일파들이 존재했으니 일제만의 잘못이라 욕하고 몰고 갈 수 없던 일이라는 걸 생각해보게 한다. 통쾌하다거나 감동적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 꼽을 이유다.
우리 민족을 짓밟았던 일제의 행동과 태도에서 극대화된 분노와 슬픔 혹은 그들에 당당히 맞서거나 복수하는 것에서 재미와 통쾌한 기분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텐데 감독은 이를 이용해 한쪽으로만 몰고 가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과거의 그 안타까운 상황적 현실에서 변절한 사람을 욕하는데 주목적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변절보다 애국을 선택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도 아니다. '군함도'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에게 집중한다.
특정 인물만을 강조하지 않아 관객이 각 인물에 동화될 수 있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다. 딸만이라도 탈출시키려는 아버지 황정민의 노력은 강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고, 본래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으나 조선인들을 탈출시키겠다는 열망 가득한 광복군 송중기는 측은지심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경성 최고 깡패 소지섭은 초반에는 그 힘을 멋지지 않게 사용하지만 후반부 주먹의 진가를 발휘한다. 또 의외의 츤데레 같은 성격이 로맨스 일부를 담당한다. 송중기 보러 갔다가 소지섭의 매력에 빠져드는 관객이 꽤나 많을 것 같다.
이정현은 위안부로 끌려왔으나 굴하지 않는 강인한 조선 여인으로서 남자들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는 역할을 한다. 김수안은 웃을 곳이 전혀 없는 이 안타까운 이야기에서 아버지 황정민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등장인물들이 하나로 어우러지지 않고 따로 놀아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각각의 인물이 펼치는 소지섭의 맨몸 목욕탕 대결 장면, 부성애, 로맨스 등이 틈틈이 영화적인 재미와 즐거움을 주며 132분이라는 긴 시간을 끌고 간다. 구출 작전의 반전도 극적 드라마를 위한 요소로 읽힌다.
강원도 춘천에 6만6000㎡에 실제의 2/3 크기로 구현한 군함도 세트장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음산하고 어두운 모습은 말 그대로 '지옥도' 그 자체다. 참담한 마음이 절로 일게 한다. 깊고 깊은 막장으로 내려가는 어린 소년들의 얼굴로 오프닝을 여는데, '지옥도'라는 별칭과 맞물려 그들의 고행이 어떠할지 예견하게 한다.
류승완 감독의 재기와 재치는 그의 전작들보다 약해 실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중해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상업영화로서 어쩔 수 없이 내세워야 하는 부분이 충돌한 듯하다
물론 우리가 몰랐던, 참담했던 과거의 한 부분을 알려주고 용기 있게 도전한 모든 이의 열의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132분. 15세 이상 관람가. 26일 개봉.
jeigun@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