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자` 봉준호 감독. 제공|NEW |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입체적이다. 단순한 듯 복잡하고 쉬운 듯 어렵다. ‘옥자’ 역시 그렇다. 밝고 아름다운 듯 어둡고 잔혹하다. 그는 주인공인 ‘옥자’와 ‘미자’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을 비정상적으로,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사회를 그만의 시선으로 독특하게 그려낸다. 주인공들은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몸부림치고 고군분투한다. ‘옥자’ 그리고 ‘미자’가 그렇다. 이들은 냉혹한 육식 시스템에 부딪혀 싸우고 또 싸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우울하고 어두운 싸움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무슨 사랑 이야기가 이렇게 무섭냐고요? 결말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어요. 씁쓸한 잔상을 느끼는 분들도, 이 가운데 희망을 보는 사람들도 있죠. 제 영화의 특징 중 하나”라며 미소 지었다.
‘옥자’는 슈퍼돼지 옥자와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 분)의 우정을 담은 어른 동화다. 일반적인 아름답기만 한 동화가 아닌, 잔혹함을 머금은 현실 동화다. 미란도 그룹의 슈퍼돼지 생산 계획에 따라 전 세계 26개국 축산 농가에 제공한 돼지 26마리를 되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영화에는 육식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문제의식도 녹아 있다. 동물 보호와 식육의 대치, 동물들의 대량도살 시스템, 반려동물의 기준 등등 예민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담고 있다.
봉 감독은 “보다 명확하고 시원한 결말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비록 우울한 모습일지라도 그게 현실이라면 인정하고, 작은 희망을 바늘구멍처럼 뚫어놓고 오는 게 적절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이 올린 평, 느낌 등을 찾아 봤는데 굉장히 상대적이더군요. 관점도 다양하고요. ‘옥자’와 ‘미자’ 입장에서 보면 미란도 그룹이 악의 축이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게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었어요. 반려 동물이 있는 분들은 동물 보호 감성에 특히 몰입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아닌 경우에는 육식이나 유전자 조작 식품에 관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물해방운동을 펼치는 단체에 몰입해 논쟁을 벌이는 분들도 있고요. 이런 걸 원했던 것 같아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되짚어 봐야할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거요.”
봉 감독은 “‘옥자’와 ‘미자’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다 이상하다. 논쟁의 여지가 다분히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게 회색 지대로 표현돼 있다. ‘옥자’만이 순수한 생명체이고 ’미자’는 그런 옥자를 사랑하는 강인한 소녀”라고 강조했다.
“방정맞은 TV쇼의 예능 스타, 마케팅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속이는 미란도 그룹의 CEO, 동물 수호를 외치지만 그 순수한 의도와는 다르게 모순점이 많은 단체 등 ‘옥자’를 둘러싼 세상이, 사람들은 모두 미쳐있는 상태에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누구에게 몰입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무엇을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저마다 느끼는 그 지점에서 뭐든 이야기하고 상기시킨다면 제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죠. 감독의 눈에 비친 이야기를 그려냈지만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은 또 저마다 다르니까. 그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싶어요.”
↑ `옥자` 봉준호 감독. 제공|NEW |
“사실 ‘옥자’는 기술적인 부분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손이 많이 가는 작품이에요. ‘옥자’만큼 중요한 ‘미자’의 역할을 서현이가 너무도 완벽하게 해줬기 때문에 제가 마음껏 다른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죠. 캐스팅 당시 오디션을 통해 무수히 많은 아역 배우들을 만났지만, 안서현은 ‘미자’ 그 자체였어요.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했죠. 그리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됐어요. 완벽한 미자가 있었기 때문에 ‘옥자’가 완성될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네 번째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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