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 ’히어로’인 건 아직 낯설다. 하지만 기존 남성 위주의 히어로 영화, 블록버스터와는 또 다른 짜릿한 쾌감과 재미를 충분히 선사한다. 영화 ’원더우먼’(감독 패티 젠킨스)이다.
7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원더우먼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원더우먼’은 현실의 영국 런던에 적응해 사는 다이애나(갤 가돗)가 낡은 사진 한 장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그러곤 과거 장면으로 넘어간다. 지도에 나타나지 않은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의 공주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언젠가 나타날 악에 맞서려 혹독한 여전사 훈련을 받는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다이애나는 때마침 섬에 불시착한 조종사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를 만나고, 인간 세상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칼과 방패를 들고 길을 떠난다.
’원더우먼’은 ’전쟁의 신’ 아레스 신화와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를 섞어 현실과 판타지 경계 위에 존재하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강인하고 단단하지만 그에 반해 순수하며 곧은 신념을 갖고 살아왔던 다이애나가 맞닥뜨린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성을 대하는 편견은 기본이고, 다른 이를 굴복시키려는 인간의 악함에 맞서야 한다.
데미스키라 왕국 전사들이 독일군을 만나 전투를 벌이는 지점이 볼거리다. 점프해 몸을 돌려 화살 쏘기나 니킥 날리기 등등이 슬로우모션과 결합해 몰입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남자들의 투박한 것과는 반대되는 날렵한 모습이 장점이다.
아이맥스 같은 넓은 화면으로 볼 때 전투신은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중후반부 다이애나가 악을 제압하는 장면들 역시 홀로 적과 맞서는데도 스크린을 꽉 채울 정도로 화려하다.
진실을 말하게 하는 헤스티아의 올가미, 총알을 막아내는 팔찌, 신을 물리칠 수 있는 검 ’갓킬러’ 등등 원더우먼만의 무기들도 흥미를 돋울 만하다.
전쟁을 일으키게 된 인간들의 욕심과 희생, 악함과 선함, 인류애 등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도 담겼다.
어린 시절, 할리우드 히어로 블록버스터를 처음 만났을 때의 희열과 재미가 아마도 이러지 않았겠냐는 생각도 들게 한다.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정의롭기 그지없는 원더우먼은 어수룩한 점도 있고 오글거리는 점도 있다. 일부러 시리즈의 시작이기에 이렇게 연출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 어린 시절의 감정, 또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관객을 인도했다면 성공한 전력이다.
물론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이미 스파이더맨이나 헐크, 토르 등등을 봐왔기에, 원더우먼의 전투와 행동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더우먼’은 섬세함과 순수함으로 승부하는 캐릭터다. 아직은 초보 히어로의 매력이라고 해야
트레버 대위를 비롯해 위장전문가, 저격수, 밀수꾼 등 어설픈 남성 조력자들은 원더우먼과 함께 독일군의 신종 독가스 개발과 공격을 막으려 하는데, 그 일련의 과정에서 협업은 원더우먼을 더욱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141분.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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