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대한민국 최고의 개그맨 유재석. 그 이전에 김국진이 있었다.
MBC ‘라디오스타’의 중심을 담당하고, SBS ‘불타는 청춘’에서 강수지와 묘한 ‘썸’을 타고 있는 ‘노익장 귀요미’ 김국진. 그를 여기까지 안다면 당신은 김국진의 진면목을 모르는 사람이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이라면 지금의 유재석을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을 테니까. ‘유느님’으로 칭해지는 유재석과 같은, 어쩌면 그보다 더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가 바로 김국진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태초에는 그가 있었다. 유재석이 2000년대의 3사 방송연예대상을 휩쓸었다면 90년대 방송가를 주름잡던 이는 김국진이었다. 스스로도 ‘롤러코스터’ 같았다고 회상하는 김국진의 인생, 왜 그가 ‘태초에 그가 있었다’는 말을 듣게 됐는지 살펴본다.
↑ 사진=MBN스타 DB |
◇ 김국진, 한 때는 방송계를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김국진은 1991년 제1회 KBS 대학 개그제로 데뷔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유재석, 남희석, 김용만, 박수홍 등과 동기로 개그맨 생활을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1992년 KBS 코미디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고 돌연 미국 LA로 떠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감자골 사태’다.
지난 2011년 MBC ‘라디오스타’에서 비로소 허심탄회하게 풀어놨던 ‘감자골 사태’는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으로 이뤄진 개그팀 ‘감자골’이 방송사의 혹사에 못 이겨 보이콧을 선언했으나 개그계 전반의 오해로 번져 결국 방송출연 정지와 한국 연예인협회에서도 영구 제명 당했던 사건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김국진은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와 MBC에 터전을 잡았다. 김국진의 전성기는 이 때부터 시작인데, 그는 MBC ‘테마게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출연하며 “여보세요” “나 소화 다 됐어요” “밤새지 마란 말이야” 등의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그의 유행어는 방송뿐 아니라 CF계를 강타했다. 김국진은 한 방송에서 “전성기 때에는 일주일에 1억을 벌기도 했다”며 “당시 CF를 100편 가량 찍었고, 모델로 나섰던 ‘국진이 빵’이 하루에 60만 개씩 팔리기도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또한 김구라는 김국진의 인기에 대해 “당시 PD들이 김국진을 섭외하기 위해 그의 집 앞에 일주일을 진을 치고 기다려야 했을 정도”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테마게임’ ‘도전 추리특급’ ‘우리들의 일밤-김국진의 대단한 대결’ ‘김국진 김용만의 칭찬합시다’ ‘전파견문록’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한 김국진은 MBC ‘반달곰 내 사랑’을 통해 코미디언 최초로 미니시리즈 주연까지 맡게 된다. 이어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위용을 입증한다.
그는 1999년 한국갤럽 설문조사 ‘건국이래 최고의 인기연예인’에 조용필을 제치고 1위에 올랐고, MBC 다큐멘터리 ‘21세기 대중문화 대장정’ 20세기 빛낸 한국 코미디언 1위에 오른 바 있다. 96, 98년 MBC 코미디대상 등 95~2001년까지 매해 각종 인기상과 최우수상을 휩쓸었다.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김국진은 “당시 스케줄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꽉 차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김국진의 전성기는 실로 대단했다.
◇ 김국진의 슬럼프는 재기를 위한 발판이었다
김국진은 1999년 갑작스레 방송을 그만두고 골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김국진은 모든 방면에서 잘 풀리지 않았다. 골프 프로테스트를 15번이나 낙방했고, 사업에도 연달아 실패했으며, 2002년 시작한 결혼 생활도 1년 반 만에 끝을 맺었다. 그는 한동안 방송계를 떠나 있었으나 2007년 MBC ‘라디오스타’ MC를 시작으로 복귀했다.
지난 11월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 김국진은 “사람들이 골프를 하기 위해 방송을 그만둔 것으로 오해하는데 저는 살기 위해 시작했다”며 “가정의 문제와 사업 실패 때문에 힘들었었는데 날 버티게 해줬다”고 골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후 ‘라디오스타’에서는 간혹 김국진을 향해 다른 MC들이 “골프 치러 중국 자주 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국진은 끝없는 실패를 털고 2007년 ‘라디오스타’를 시작으로. KBS2 ‘남자의 자격’ ‘위기탈출 넘버원’ MBC ‘명랑히어로’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MC로 참여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남자의 자격’에서 “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내려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며 “내려가는 속도만큼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자신의 슬럼프와 재기를 담담하게 고백해 큰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국진의 개그 스타일에 그가 과거 언급한 명언이 있다. 김국진은 한 프로그램에서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나름 수준 높은 웃음을 유발할 것이라 기대했던 스탠딩 코미디를 했는데 반응이 썰렁했다. 당시 박성명 PD가 해준 말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개그는 남녀노소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큐가 높거나 낮거나 함께 웃을 수 있는 게 진짜 웃음이다’라는 말이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시 복귀했을 때 방송 트렌드에 영 감을 못 잡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곧 4MC 사이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잘 잡아갔다. 김국진은 가끔은 당황하고 귀여운 면모를 보이면서도 토크를 할 때에는 조용조용한 말투로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예능감을 갖췄다. 친근함과 오랜 세월 쌓은 방송 감각으로 아직도 시청자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김국진의 남다른 포부가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김국진은 때로는 소심해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대범하고 흔들리지 않는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유명하다. 김용만, 김수용 등 그와 함께 개그를 펼쳤던 이들뿐 아니라 수많은 후배들도 어려운 이를 외면하지 않는 김국진의 포부를 입모아 털어놓기도 했다.
김용만은 지난 2007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김국진과의 일화로 “제가 한때 방송을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그 때 형이 받은 계약금 3천만 원을 그냥 줬다”고 밝히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생각하는 분이다. 인생에 있어서 배워야 할 게 많은 형”이라고 그를 극찬했다.
김수용은 2013년 ‘라디오스타’에서 “결혼할 때 제가 어려웠는데 형이 제게 ‘신혼여행을 내가 보내주겠다’고 말하며 계좌에 어마어마한 액수를 보냈다”며 “형이 ‘이건 반 밖에 안 된다. 갔다와서 또 해주겠다’고 말했다. 진짜 잘 되면 갚아야 할 대상 0순위”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숙 또한 ‘해피투게더’에서 “개그맨 후배들은 커피 심부름을 자주 하는데, 스무 잔 넘게 커피를 뽑던 중에 선배님이 ‘난 후배들에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며 손수 뽑아 드셨다. 하루는 지방 행사에서 돈을 받지 않고 오는 우리에 ‘개그맨의 자긍심을 지켜야 한다’며 자신의 행사비를 후배들에 나눠 쓰라고 주고 가셨다”며 김국진의 일화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김국진은 후배들에게는 개그맨으로서의 자긍심을, 동기들에게는 어려울 때 찾을 수 있는 형으로서 늘 자리해왔다. 하루는 이름도 모르는 대학교 후배가 김국진을 찾아오자 앞뒤 따지지 않고 그를 위해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줬다는 일화도 그의 남다른 포부를 짐작케 한다.
김국진의 인생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도,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예능계에서 다시금 ‘불타는 청춘’이 됐고, “롤러코스터에는 안전바가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즐기고 자신 있게 마음대로 가라”는 자신의 말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 됐다. 이런 김국진의 다음 예능인생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