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계상에게 영화 ‘소수의견’은 기회이면서 위기였다. “안 좋은 연기가 다 들통날 것 같아” 고민도 됐다지만, “놓치고 싶진 않았던, 그래서 죽어라 열심히 했던 작품”이었다.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법정 스릴러지만, 이 영화는 호소하지도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가랑비에 온몸이 다 젖는” 그런 기분이다. 소란스럽지 않지만 그 울림은 강하고 깊다.
강제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열여섯 소년과 스무 살 의경의 사망 사건. ‘소수의견’은 이를 은폐하려는 국가권력과 변호팀의 진실공방을 다룬 작품이다. 언뜻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영화는 특정한 사건, 사실과 관계가 없다”는 선명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김성제 감독은 시나리오 각색과정 2년을 포함, 5년간 이 작품을 준비했다. 입봉작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박재호(이경영)의 비극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개봉까지 2년을 또 기다려야만 했다. 투자·배급을 맡았던 CJ가 발을 빼면서 2년간 표류했다.
“편집본을 봤는데 언젠가 상영될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내용이 갖고 있는 힘이 관객들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도 궁금했고요. 모든 배우들이 한 마음으로 움직인 영화입니다.”
김 감독은 윤계상을 국선 변호인 ‘윤진원’ 역에 캐스팅했다. 모험에 가까운 캐스팅, 그러나 “윤계상이 꼭 윤진원 같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당시 윤계상은 ‘윤진원’처럼 막막했고 절박했다. “그 어느 때보다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었고,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간절함이 컸던 시기”였다.
“‘윤진원’이 사건을 맡게 된 계기는 ‘가장 큰 사건이 될 수 있어’ 이 말 한마디 때문이었죠. 열정을 갖고 시작했는데 너무 억울하고 열 받다 보니 전면에 나서게 되고, 그러면서 슈퍼파워를 내는 거죠. 그런 모습들이 비슷한 것 같아요. 저 역시 진짜 배우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역할에 점점 몰입하다보니 화도 나고, 분출하는 신이 많아지는 거죠. 그때마다 감독님이 ‘안돼 안돼’ 절제하라고 하셨어요. 공수경 기자(김옥빈)가 기사 쓴다고 차에서 나갔을 땐 나도 모르게 ‘미친X’ 소리가 나오더군요. 감독님이 막 뛰어오더니 ‘윤진원답지 않다’고 누르라고 하셨죠.(웃음)”
이경영 유해진 권해효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함께 찍어야 했으니 “마치 오디션을 보는 것 같았다”는 것.
“정말 끝내주세요. 법정 공방신 찍을 때도 윤진원이 증거자료를 갖고 나가는 장면에서 토론하느라 9시간이나 걸렸어요. 권해효 선배님은 ‘안 된다. 판사의 신성한 자리다’고 하시고, 이경영 선배님은 ‘감정적으로 나갈 수 있다’ 얘기하시고. 그거 갖고 정말 열정적으로 토론하세요. 대단들 하세요. 다 진짜 같아요.“
이 영화는 개봉 후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 바람이 불고 있다. 메이저 영화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지만, 벌써 26만명이 이 영화를 봤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에, 부정부패한 권력의 민낯에, 관람후기들은 뜨겁고 치열하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는 작품, 배우의 심정은 어땠을까. 윤계상은 “부담이 없을 순 없겠지만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그걸 지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이 설득력 있게 공감되지 못했다면 아마 하지 않았겠죠. (왜 선택했는지) 영화에 답이 있어요. 영화를 보면 알아요.”
god 출신 아이돌 스타에서 배우로 변신, 어느덧 11년이 흘렀다. 억세게 운이 좋았고, 행복했고, 기쁨도 맛봤다.
그러나 “10년 지나면 뭔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 별 거 없더라”며 쓴웃음을 짓는 그다.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썼어요. 잘 됐으면 좋겠고, 흥행도 하고 싶고, 연기도 잘하고 싶었죠. 그런데 지금은 급한 마음이 없어졌어요. 그땐 뭐가 그리 억울하고 분했는지 참… 뭔가 너무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배우보다도 다른 뭔가를.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지금은 안 그럽니다.(웃음)”
윤계상
“초반에 노숙자로 나와요. 깡패 돈을 갖고 작전을 하다 역작전에 걸려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액션을 하고 싶었어요. 옛날에는 살도 금방 빼고, 운동하면 금방 붙었는데 지금은… 하하!”[ⓒ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