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고 각박한 시대, 우리의 소신은 어디까지 타협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독특한 소설 ‘로맨스 푸어’가 1일 출간됐다.
올 하반기 박보영, 정재영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개봉되는 전작 소설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로 20대들의 비참한 인턴 문화를 신랄하게 까발렸던 이혜린 작가의 신작이다.
이혜린 작가는 ‘로맨스 푸어’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서울 홍대 입구를 배경으로 사랑과 일, 결혼, 가치관 모두 거세게 흔들리는 30대들의 고민을 스릴 넘치게 그려냈다.
연애만큼 짜릿한 좀비 추격전과 좀비만큼 살벌한 연애담이 공존하는 이 소설은 어둡고 각박한 요즘 사회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작품.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사랑과 결혼은 다르다고. 그래서 20대의 연애와 30대의 연애는 달라야 한다고. 또 성숙이라는 미명 하에 세상과의 타협을 강요하기도 한다. 20대엔 세상에 날을 세워도 되지만, 30대엔 불의에 눈 감거나, 혹은 더 나아가 불의를 저질러야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다고 겁을 준다.
‘로맨스 푸어’의 주인공 유다영은 세상의 지침에 충실히 따라온, 그래서 그 누구보다 먼저 철 들었다고 믿었던 은행원이다. 남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듯한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들겨대는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배경은 매우 가까운 미래의 서울. 전염병이 돈다는데,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은폐하기 바쁘고, 전문가들은 비타민을 많이 섭취하라는 쉬운 말만 되풀이한다. 비타민 주사의 가격은 폭등하고, 진짜 백신은 상류층에만 유통된다는 음모론이 힘을 얻는다.
그러다 어느 날 바이러스가 더욱 거세지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차례로 목숨을 잃는다. 이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건 바이러스가 ‘없는 동네’, 강북만을 휩쓸었다는 것. 최고급 아파트 유토피아팰리스에 입성해야만 이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물론 그 보호에는 대가가 따른다. 남들보다 더 가지기 위해선, 남들보다 더 영악해야 한다. 타인의 고통에 눈 감고, 양심의 가책을 금방 잊고, 못가진 사람들을 멀리 해야 한다.
그러나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속물스러운 주인공 유다영은 아직 철이 덜 들었다. 완벽할 줄 알았던 이 여자의 계산법은 우리 주위 많은 여자들처럼 자주 오류를 일으키고, 영화처럼 펼쳐지는 전쟁 앞에서 완전한 오작동을 일으킨다.
그녀의 앞에 나타난 두 가지 갈림길. 너무나 안락한 유토피아팰리스와 당장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길바닥. 백신을 놓아줄 수 있는 강남 남자 이성욱과, 좀비와 함께 맞서 싸운 추억을 공유한 강북 남자 우현. 어디서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 누구나 곧바로 정답이 나올 법도 하지만, 막상 닥치면 선택이 쉽지 않다.
‘로맨스 푸어’출간을 맞아 최고 인기 뮤지션과 아이돌 스타들을 상대로 ‘사랑과 안정,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한 동영상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들의 대답 또한 첨예하게 나뉘어 역시, 쉽지 않은 선택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동영상 인터뷰는 각 서점 사이트 및 온라인 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혜린 작가는 대가 되면, 자신의 가치관과 완전히 배치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자아와는 완전히 다른 실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20대를 지나면 안정기에 접어들 줄 알았으나, 오히려 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30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로맨스 푸어를 ‘이 치열하고 냉혹한 시대, 감히 낭만을 꿈꾸다 최하층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 등 각종 ‘푸어’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로맨스 푸어’가 현 시대를 또 어떻게 조명해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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