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의 효시로 평가되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死의 讚美)’.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현해탄 바다에 함께 몸을 던진 ‘크레이지 러브’(crazy love)로도 유명하다.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진 비극적 리얼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 기록되어 있다. 또 한국어 노래를 일본 본토에서 발매한 최초의 뮤지션이기도 하다.
90년을 이어 온 윤심덕의 유명세는 그녀의 대표곡 ‘사의 찬미’ 덕분이다. 죽음을 아름답게 찬양하는 이 곡은 지난 1926년 발매된 뒤 실제로 윤심덕이 연인과 동반 자살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곡에 담긴 깊은 한의 감성이 어필하며 후대에 길이길이 전해질 수 있었다. ‘살아 뭐하나. 죽어지면 그만인 것을’이라는 식의 염세적인 내용은 지금 봐도 파격적이며,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라는 가사는 지난 2008년 발표된 미카(Mika)의 ‘해피엔딩’(Happy Ending) 가사 ‘No hope, no love, no glory, No happy ending’와 흡사하다.
한국 대중음악의 효시라고는 하지만 이 곡 역시 외국 멜로디에 가사를 붙였다. 원곡은 지난 1880년에 발표된 루마니아 작곡가 요시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의 왈츠곡 ‘다뉴브의 잔물결’(Danube Waves)로 앞부분은 ‘사의 찬미’와 마찬가지로 무겁고 어둡게 시작하지만 점점 곡이 왈츠 스타일로 변화하며 아름답게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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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 성향의 이 곡은 윤심덕의 곡이 발표된 지 20년이 지난 1946년 다시 한 번 이슈가 된다. 리투아니아 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배우 겸 가수 알 졸슨(Al Jolson)이 자신의 전기 영화 ‘졸슨 스토리’(Jolson Story)를 만들면서 당대 최고의 뮤직 디렉터였던 솔 채플린(Saul Chaplin)과 함께 기념 곡을 만들었고, 요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의 잔물결’ 멜로디를 차용했다. ‘더 애니버서리 송’(The Anniversary Song)이라 명명된 이 곡은 지난 1947년 2월7일 차트에 등장,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올랐으며 차트에 14주 동안 머물렀다. 뿐만 아니라 지난 1947년 연간 순위 8위에 오를 정도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원곡은 지난 1880년에 만들어졌다. 해당 곡은 70년여 년 후에 알 졸슨의 샘플링 곡이 히트했지만, 알 졸슨은 원곡이 나온 겨우 6년 뒤인 1886년에 태어났다. 리투아니아 출생이니 원곡의 탄생 지역인 루마니아와도 그리 멀지 않다. 게다가 윤심덕이 1897년생이니 알 졸슨이 한참 오빠다. 알 존슨은 1900년대 초에 전성기에 코미디 배우로 전성기를 보냈으며, 이 곡으로 인기를 누린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사망했다. 원곡보다 70여 년, 윤심덕의 곡보다 20년 늦게 발표된 곡이지만 감성으로는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곡이 만들어진 계기와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군악대 음악 감독인 요시프 이바노비치는 행진곡으로 쓰기 위해 이 곡을 만들었고,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윤심덕은 같은 멜로디에 극단적인 비극과 염세를 담았으며, 미국에서는 알 존슨이 자신의 생을 기념하는 축제의 노래로 같은 멜로디를 선택했다.
‘더 애니버서리 송’은 같은 해 발표되어 똑같이 지난 1947년 차트에서 인기를 누린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탠다드 싱어이자 바이올린 재즈 연주자인 가이 롬바르도(Guy Lombardo)가 그 주인공이다.
가이 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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