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TV 속 청춘이 과거 풋풋하고 패기 넘치던 모습에서 치열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2011년 한 매체의 기사에서 처음 쓰인 말로 출산과 결혼, 연애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지금의 20대와 30대 초반, 즉 청춘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취업난, 불안정한 일자리, 천정부지로 솟는 물가에 치여 사랑과 꿈조차 함부로 가질 수 없는 비극적인 청춘들을 그대로 표현한 용어가 어느덧 흔하게 쓰이는 단어가 돼 버렸다.
이런 현실은 자연스럽게 TV에 녹아들었다. 2014년 tvN 드라마 ‘미생’은 신입 사원 장그래(임시완 분)의 회사 생존기를 그리면서 대중의 큰 공감을 이끌었다. 장그래와 신입 동기인 안영이(강소라 분), 장백기(강하늘 분), 한석율(변요한 분)도 각자의 사정을 안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등장해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젊은이들의 고민과 아픔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뤄지는 젊은이들, 청춘의 이미지는 예전의 청춘들과는 사뭇 다르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방영했던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은 대학생들의 꿈과 낭만, 사랑을 그려냈다. 1994년 MBC ‘마지막 승부’는 청춘드라마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농구를 소재로 젊은이들의 사랑과 좌절, 야망을 패기 있게 그려내며 절대적인 인기를 끌어냈다. 스포츠 드라마라는 소재로 패기,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용기, 희망 등을 그려내기 적절했으며, 당시 만화 ‘슬램덩크’의 인기와 합쳐져 농구의 부흥기를 이끌기도 했다.
1996년부터 방영된 MBC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은 젊은 남녀들의 일상을 통해 청춘들의 사랑과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논스톱’도 비슷한 터치의 시트콤이다. 2000년부터 시작해 시즌5까지 이어진 ‘논스톱’은 대학교의 학생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일상을 그려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거나 취업 문제 등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하긴 했지만, 한 에피소드에 그치거나 웃음의 요소로 사용되는 모습을 보였다. 주로 발랄하고 좌충우돌하는 낭만 넘치는 청춘들의 일상을 그리는 것에 주력했다.
하지만 현재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들은 대부분 우울하고 치열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주된 소재가 사랑에서 취업으로 옮겨간 것도 눈여겨볼 만 하다. 앞서 언급한 ‘미생’에서는 젊은이들의 취업과 신입 사원들의 치열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청춘물의 전형이라고 여겨지는 로맨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모습은 패기보다는 절실함, 절박함으로 다가온다.
‘파랑새의 집’에서는 젊은 세대들의 고민이 온 집안의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인공 김지완이 취업 문턱에서 수없이 좌절하자, 할머니가 나서서 지인에게 손자의 취업을 부탁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김지완(이준혁 분)의 자리를 마련한 장태수(천호진 분)는 그에게 “취직하려고 꿈 버리고, 야망 버리고, 열 번 쯤 떨어지면 자신감도, 마지막에는 책임감도 버린다”는 말로 취업 전쟁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웹드라마 ‘달콤청춘’ ‘취업 전쟁’ 등이 취업 전선에 놓인 젊은이들의 실상을 그린 드라마다. 특히 ‘달콤청춘’은 연애와 취업이라는 현실에서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즉, 젊은이의 상징인 사랑이 취업에 밀려 2순위가 되기도 하고, 취업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젊은이들의 취업, 사랑 속의 방황을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곧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tvN 드라마 ‘초인시대’는 ‘삼포세대’의 ‘웃픈’ 현실을 히어로물이라는 외피로 그려내면서 더욱 심도 있게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려낼 예정이다. 드라마의 극본을 맡은 유병재는 “각 캐릭터들이 젊은이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현실 때문에 하지 못하는 친구,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친구, 취업 대신 ‘뜬구름’ 격인 창업에 매진하는 친구 등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현실의 젊은이들을 그려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2030세대의 사라진 패기는 고스란히 학원물로 옮겨졌다. KBS2 ‘하이스쿨 러브온’ ‘공부의 신’ ‘드림하이’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Mnet ‘몬스타’ ‘학교 2013’ 등의 하이틴 로맨스 안에 일전 ‘마지막 승부’와 같은 청춘물의 분위기가 담겼다. 1990년대의 청춘물의 명맥이 고교생이 주인공인 학원물로 이어진 것은 눈에 띄는 변화다. 지금의 2030세대와 1990년대의 젊은이들의 위치는 그만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유병재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드라마에 차용한 것에 대해 “그냥 우리 주변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소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TV 속 달라진 청춘들의 모습은 씁쓸한 공감대를 자아내면서 취업난, 불안정한 사회 등으로 위태로운 위치에 놓인 청춘들의 현주소를 짚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