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킬미, 힐미’가 끝나고 제 생활은 현망진창이 됐어요. 그동안 나의 생활과 생각, 중심이 작품에 맞춰져 있다 보니 빠져 나오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
아직 강바람이 쌀쌀한 봄날,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가 끝나고 연출을 맡았던 김진만 PD와 만난 장소는 극중 리진(황정음 분) 리온(박서준 분) 남매의 집이었던 쌍리 인근의 한강공원이었다. 언제 촬영이 있었냐는 듯 지금은 매우 평온한 한강 공원에서 김진만 PD와 ‘킬미, 힐미’의 못 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킬미, 힐미’가 끝나고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김진만 PD의 목소리에는 작품에 대한 여운이 깊이 남은 듯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힘든 만큼 몰입했었고, 그로 인해 돌아온 성취감과 하나의 작품이 탄생시킨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다중인격을 연기했던 지성 씨와 저는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몰입했던 드라마였어요. 보통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시원섭섭하다는 감정이 들 텐데 저에게는 그저 아쉽기만 할 뿐, 시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빨리 떠나보내야 하는데, 도무지 떠나 보내지지 않네요.”
다중인격이라는 낯선 소재를 사용한 ‘킬미, 힐미’의 인기는 열풍이라고 불릴 정도로 뜨거웠다. ‘킬미, 힐미’에서 7개의 인격을 지닌 주인공 차도현 역을 소화한 지성은 벌써부터 2015년 MBC 연기대상 대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이며, 인기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패러디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수작이라고 평가받은 ‘킬미, 힐미’지만 처음 시작은 험난하기만 했다. 계속된 배우들의 출연고사로 캐스팅 난항이 이어졌고, 그 과정 가운데 크고 작은 논란들이 일기도 했던 것이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한 달 전, 가까스로 지성과 황정음이 남녀 주인공으로 확정되면서 ‘킬미, 힐미’는 촬영을 위해 움직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었죠. 지성과 황정음이 없었으면 지금의 ‘킬미, 힐미’는 없는 것이니까요. ‘해동 육룡이 나르샤’라고 지나간 여러 가지 고통과 엇갈림들이 지금의 ‘킬미, 힐미’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처음 ‘킬미, 힐미’는 150억 규모의 중국 드라마에,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에요. 작업을 진행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프로젝트가 떠있고, 본질보다는 부차적인 것이 앞선 것 같아 위험하다 생각이 들었었죠. 전화위복이라고, 캐스팅이 불발되면서 놓쳤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던 것 같아요. 제목이 ‘킬미, 힐미’ 잖아요. ‘킬미’ 이 프로젝트 자체가 죽어야 ‘힐미’ 살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한 번 죽은 덕분에 모든 것이 다 맞아 떨어진 것이죠.”
물론 지금은 최고의 선택이었지만, 당시 지성을 ‘킬미, 힐미’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건 다소 의외였다. 연기력은 좋았지만 당시 지성은 앞서 언급됐던 캐스팅 후보들에 비해 스타성이 2%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은 20대 배우에서 캐스팅하겠다’라는 기존의 입장과 깨뜨리는 캐스팅이기도 했다.
“기획 단계부터 진수완 작가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이야기는 너무 어둡고 무겁고 어려울 수 있으니, 반쯤 떠서 갔으면 좋겠다. 주인공은 무조건 젊은 배우, 20대 배우에서 찾자’ 이게 진수완 작가와 제가 정한 캐스팅 방향이었죠. 그런데 캐스팅을 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 또래 배우들이 다중인격을 연기하기는 위험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20대 배우들 캐스팅이 잘 안 됐어요. 그 상태서 ‘킬미, 힐미’ 프로젝트가 너덜너덜 해졌죠. 그때 지인으로부터 지성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길로 지성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죠. 8시에 만나서 새벽 2시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죠. 차도현은 지성이다. 다음날 제작사에 통보하고, 진수완 작가에게도 알렸어요. 그때 진수완 작가는 캐스팅에 있어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감독님의 결정을 따르겠다’며 따라주었고, 덕분에 최고의 캐스팅을 탄생시켰습니다.”
드라마 제작 전 캐스팅으로 고생을 했다면 ‘킬히, 힐미’가 방영된 이후에는 동시간대 방송되는 SBS ‘하이드 지킬, 나’의 원작자 ‘지킬박사는 하이드씨’ 이충호 작가의 아이디어 도용 논란으로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이와 관련해 심경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김진만 PD는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로 답했다. 조심스럽다거나 답하기 곤란해서가 아니라 이미 ‘하이드 지킬, 나’와 ‘킬미, 힐미’는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엄연히 다른 작품인데 뭐라고 더 말할 수 있나요.”
김진만 PD에게 ‘킬미, 힐미’의 인기 요인에 대해 ‘퍼즐조각처럼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라고 설명했다. ‘킬미, 힐미’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요인은 단순히 작가의 힘도, 배우의 힘도, 연출의 힘도 아닌 모든 것이 합을 이뤄 선을 이뤘다는 것이다.
“모두가 퍼즐 조각처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면서 ‘킬미, 힐미’라는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미미(‘킬미, 힐미’ 애청자를 일컫는 말)들도 한 조각이었습니다. 저는 미미의 공식 1호팬입니다. 미미들이 활동하는 부분을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거든요. 저희는 단순히 TV 드라마를 만들지만 이걸 하나의 문화로 소비하는 것은 대중의 몫입니다. 미미들이 ‘킬미, 힐미’를 가지고 놀면서 TV 드라마를 문화현상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통해서 이슈화 시키지도 하고, 더 나아가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기부운동이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죠.”
김진만 PD에게 ‘킬미, 힐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1회부터 20회까지 모든 장면들이 쏟아져 나왔다. 즉 가장 뛰어난 명장면을 하나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김진만 PD에게 ‘킬미, 힐미’란 모든 것들이 명장면이었던 것이다.
“연출 입장에서도 ‘킬미, 힐미’는 잊기 힘든 드라마에요. 캐스팅 과정에서 힘든 일이 있었고, 이 작품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죠. 초반에 많은 배우들이 시놉과 1~2부 대본을 보고 고사했던 이유가 ‘어렵다’였습니다. ‘이게 과연 한국의 TV드라마에서 대중성을 지닐 수 있는 이야기인가’라는 이유로 고사했고, 진수완 작가와 저도 고심되는 부분이 많았죠. 덕분에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이 무거움을 벗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죠.”
김진만 PD는 무거움을 벗을 수 있는 해답을 황정음에게서 찾았다. 김진만 PD는 “황정음은 지금의 ‘킬미, 힐미’의 톤을 찾도록 영감을 준 사람”이라며 그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처음 코믹 연기를 할 때 황정음이 많이 두려워하더라고요. 이미 자신은 ‘하이킥’ 때의 황정음이 아니라며. 그래서 ‘이미 너는 그 때의 황정음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느낌이 나올 것’이라고 말해줬죠. 황정음은 자신이 납득하지 않으면 연기를 못하는 배우에요. 이는 반대로 말해 상황이 납득이 되면 이를 표현하는 디테일은 감히 당대 최고입니다. 1회에서 신세기와 오리진의 첫 만남을 찍을 때였어요. 지성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황정음에게는 그런 지성을 마음껏 조롱하라고 지시했죠. 비하인드를 말하자면 대본 속 ‘너에게 반한 시간’은 로맨틱한 장면이었어요. 지문에는 ‘신세기의 말을 들은 리진의 가슴이 뛴다’였는데, 촬영 전 황정음에게 물었죠. 정말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뛰느냐고. 그래서 코미디로 갔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신을 찍으면서 킬미힐미 드라마의 톤이 정해졌죠. 황정음은 극의 분위기를 정한 매우 소중한 배우였습니다.”
황정음이 김진만 PD에 영감을 준 배우라면 지성은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던 배우였다. 김진만 PD는 “지성이라는 배우가 모든 디렉션을 표현해주고 놀아줬기 때문에 가능한 드라마였다. 지성이 없었으면 지금의 ‘킬미, 힐미’는 없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기억해 2015년 1월7일 오후 10시 정각, 내가 너한테 반한 시간’ 이 대사를 찍을 때 였어요. 지성에게 지시했죠.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신세기로 인해 사람들이 눈물 흘릴 날이 올 것이니, 무조건 시침 때고 진지하게 가야한다’고. 저와 10년을 합을 맞춘 편집자도 처음에는 갈피를 못 잡았었는데 지성은 제가 말한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더라고요. 지성과 잘 맞았어요. 작가도 모르는 감정의 깊이를 저와 지성이 만들낸 지점이 있는데, 바로 5회 호박마차 키스신이었죠. 드라마를 보면 세기가 눈물을 흘리는데 사실 대본에 없는 부분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세기에게 있어 첫 키스, 그것도 리진이와 첫 키스인데 눈물이 안 나겠어요? 지성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서 제 디렉션 하나만으로 해당 장면을 완성시켜 낸 것입니다.”
두 주연배우 지성과 황정음에 대해 말한 김진만 PD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두 배우가 큰 소리 없이 따라 주면서 촬영이 원활이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큰 소리 한 번 낸 적이 없어요. 이 모든 것이 이 배우들이니 가능했던 것 같아요. 때로는 소위 ‘갑질하는 배우’도 있는데 ‘킬미, 힐미’에서는 이 같은 풍경들을 찾아 볼 수 없었죠. 모두들 디렉션에 순순히 따라 주었고, 현장에서 ‘장면 수정 안 해주면 안 찍는다’고 버팅기는 배우를 기다려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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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