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우기획은 지난해 8월 경영난과 더불어 여러 사정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인기 가수인 장윤정과 박현빈을 제외한 윤수현 등 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 그의 절박함이 해당 이메일에 엿보여 마음이 애잔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이상의 내용은 기자 개인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이 본 기자뿐 아닌 윤수현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이라 여겨도 무리는 아닐 터다. 아이돌 가수마저 트로트 시장을 넘보고 있는 요즘, 정통 트로트를 고집하는 그들이 살아남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약 7개월이 지난 오늘(9일), 윤수현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 그의 노래에 관심이 가서가 아니다. 그의 홍보사가 보내온 자료에서 '여자 싸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야한 동영상'(성인 비디오)에서나 봤음직한 사진 3장을 본 덕분이다. 그의 이름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찾아보고, 뮤직비디오를 반복해 보기까지 했다.
성공적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홍보사의 자료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그것이 윤수현 이름 석자를 알리는 역할을 맡은 자의 첫 목적이니 말이다.
문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천태만상'이란 제목의 그의 노래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기 어렵다. 당혹스럽다. '요리한다 요리사/ 소개한다 중개사/파마한다 미용사/ 간호한다 간호사' 같은 나열식 가사가 전부다.
'천태만상 인간 세상/ 사는 법도 가지가지/ 귀천이 따로있나'라는 후렴구에서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주제의식을 부각시켰다는 데 역부족이다. 게다가 '땅콩 회항', '백화점 모녀' 등 최근 여론을 들끓게 한 일명 '갑(甲)의 횡포'를 풍자했다는 (홍보사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신 나는 멜로디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면 충분한 노래에서, 트로트 특유의 '한(恨)'이나 '정(情)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다.
대신 윤수현은 스튜어디스·경찰복·메이드(하녀)·간호사 의상을 입은 채 몸을 흔든다. 어떤 의상이든 상의는 'V'자로 깊게 파였다. 가슴골이 드러난다. 미니스커트 아래로는 망사 스타킹 혹은 가터벨트를 착용했다.
의미 없는 가사는 여느 아이돌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타부(Taboo)', 즉 남성들의 금기된 욕망을 자극하는 제복 의상을 입고 나오는 여가수 역시 그가 처음은 아니다. 과거 소녀시대, AOA, 써니힐 등 다수 걸그룹이 그랬다.
홍보사 측은 "여자 싸이 윤수현이 트로트 가수 최초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며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천태만상’ 뮤직비디오와 함께 중국판 ‘천태만상’ 뮤직비디오도 공개했다. 전곡을 중국어로 부른 트로트 가수는 그가 최초라 더욱 기대 된다”고 밝혔다.
천태만상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벗어야 주목받는 현실은 트로트 가수라고 예외가 아니다"며 "안타깝지만 당신(기자) 역시 윤수현을 이제서야 바라봐 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천태만상' 외 윤수현의 1집 수록곡 중 '꽃길' '눈물의 부르스' 등을 들어보면 그가 트로트의 깊이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가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 단 한 곡으로 폄하되지 않길 바란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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