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MBN스타 정예인 기자]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국가에 큰 공을 세웠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참한 생을 살았던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승리로 이끌었던 암호문 에니그마에 대해 그렸다. 에니그마는 24시간 마다 암호 체계가 변하는 탓에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로 알려졌다. 독일은 에니그마를 이용해 무전을 교환, 연합군을 교란했다. 결국 영국에서는 각 분야의 수재들을 모아 국가 기밀 프로젝트로 에니그마 전담 암호 해독팀을 만들었다.
암호 해독팀에 24살에 캠브리지 대학 교수가 된 천재,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앨런 튜링은 “기계를 사람이 이길 수는 없다. 기계는 기계만이 이길 수 있다”며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기계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암호 해독팀이 꾸려진 초반 멤버들은 앨런 튜링의 제안을 터무니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곧 그의 방법만이 유일하게 에니그마를 풀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고, 힘을 모은다.
↑ 사진=이미테이션 게임 포스터 |
앨런 튜링이 만든 기계는 제2차 세계대전을 더 큰 피해 없이 마무리 짓게 하며 인류를 구했다. 또한 암호 해독 기계는 후손에게 ‘튜링 머신’으로 불리면서 컴퓨터의 시조가 됐다. 그러나 세계를 변화시킨 그의 업적은 국가 기밀이라는 명목 아래 비밀로 부쳐졌다. 영국이 언제 발발하게 될지 모를 전쟁을 위해 에니그마를 해독했다는 사실을 함구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국가에 공헌한 앨런 튜링의 개인적 삶은 더욱 비참했다.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은 당대 법안에 따라 처벌받았다. 그는 호르몬 치료라는 명목으로 화학적 거세를 당했으며,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게 된 것은 50년이 지난 후인 지난 2013년의 일이다.
그 누구도 앨런 튜링이 인류에 큰 힘이 되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천재였지만, 인간관계에 지독히 서툴렀다. 학창 시절에는 동급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했고, 첫 사랑인 크리스토퍼 모컴을 제외하고는 친구도 없었다. 게다가 하나 있는 크리스토퍼 모컴은 지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기에 지독한 외로움은 커졌다. 암호 해독 기계에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첫 사랑을 잃은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낸다”는 문장은 더욱 뜻 깊다. 이는 앨런 튜링이 학창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말이며, 여자라서 꿈을 펼치지 못한 조안 클라크에게 용기를 준 말이다. 또한 영화를 본 관객의 마음속에 남아 스스로의 존재를 되새기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단순히 어려움을 딛고서 영웅적인 일을 했다며, 앨런 튜링을 칭송하는 작품이 아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진 폭력, 그 아래 희생되더라도 밝혀지지 않는 진실. 그리고 자신이 남긴 업적을 알지 못한 채 눈 감아야 했던 한 사람의 외로움을 알린다. 오는 17일 개봉.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