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율을 기대했다. tvN 드라마 ‘미생’ 속의 까불거리는 한석율. 그러나 5대5 가르마 머리만 빼곤 극 중 모습과 전혀 달랐다. 시종 진중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을 내놓는 인물. 배우 변요한(30)이다.
아, 도대체 한석율은 어디로 간 것인가. 변요한은 “작품에 관한 인터뷰가 모두 끝날 때까지 나는 ‘미생인’이다. 그래서 진중해지려고 한다”며 “한석율처럼 들떠 있는 모습이 아닌, 진짜 변요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큰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면서도 “친한 사람에게는 장난도 많이 친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어렵게 느끼기도 하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럼 연기는 어떻게 했을까. 드라마 캐릭터와 실제 인물의 간극이 너무 컸다. 여러 독립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변요한이지만 의아하다.
“한석율과 저는 많은 부분이 다르죠. 하지만 극의 인물을 만났을 땐 공감되는 부분을 찾으려고 해요. 비슷해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게 배우죠. 한석율은 정말 끝날 때까지 어려운 역할이었어요. 나 자신을 믿고 연기해야만 했어요. 한석율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말이죠. 끝나고 돌아보니 한석율은 현실의 나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이더라고요.”
힘겨웠던 만큼 선배 배우들의 도움도 컸다. 변요한은 “이성민, 손종학 등 모든 선배들이 도움을 줬다. 딱히 누구를 꼽기 어렵다”며 “서로가 힘들 때 일으켜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음, 배우로서의 자부심이라기 보다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한 지속적인 갈증이랄까요. 갈망이 계속 느껴져요. 현재 하는 일이 힘들지만 즐겁고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믿음과 앞으로의 길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그 길을 올바로 걷기 위해 마음가짐을 바로 잡아야겠죠. 아홉수라는 것도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참 흔들림이 없다. 대답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가 목사다. 차분하고 올곧은 성격이 집안 분위기 탓일 수도 있다. 역시 그랬다. 변요한은 “아버지께서는 인간 변요한의 고민을 들어주시고 철들도록 도와준 분”이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배우가 되는 일을 반대하신 건가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아요. 단지 제가 꿈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지, 더 간절하게 꿈을 잡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도와주신 것 같아요. 무조건 반대는 아니었단 뜻이죠. 인간 변요한은 그렇게 ‘배우’라는 꿈에 대해 간절함이 생겼어요. 지금은 아버지께서 든든히 응원해주시고요 물론.”
부모님에 대한 감사였다. 변요한은 그래서 자신의 첫 수입을 부모님께 다 드렸다. “내 일은 모두 부모님 덕분”이란다. 장가갈 때까지도 용돈을 받을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수입은 일단 부모님께 다 드려요. 용돈으로 생활하죠. 독립영화를 찍을 땐 수입이 적으니 번 돈으로 제 생활을 했고요. 여유가 있을 땐 예전에도 남은 돈을 부모님께 드리곤 했지만요. 아, 여동생이 있는데 동생에겐 돈 대신 함께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동생은 영화감독 입봉이 꿈이거든요.”
가족 이야기가 나오니 얼굴에 옅은 미소가 보였다. “돈 벌면 그래도 비상금이라도 마련하라”고 말을 건네자 “다 드려야 아들 키우는 맛이 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첫 웃음이다. 만면이 환하다. 이 타이밍을 놓칠 수 없었다. 가벼운 질문 퍼레이드다.
“저 같으면 대화로 소통할 것 같아요. 만약 끝까지 상사와 타협이 안 된다면 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대적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갈등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 같아요. 다만 극 중 한석율은 성대리에게 반항한 게 아니에요. 정당히 남자 대 남자로 대면한 거죠.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관계가 심하게 삐걱대기도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성대리의 부정이 담긴 사진을 찢어버린 장면은 엄청 어른스럽지 않았나요?”
그러면서도 변요한은 “직장인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연기만 해도 쉽지 않은데,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안 된다”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조차 송구스럽다”고 겸손했다.
한석율은 패션 감각도 남달리 돋보였다. 이날 인터뷰 현장에서의 옷차림도 근사했다. 극 중 패션이 본인 스타일인지, 코디가 맞춰준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패션은 감독님과 많이 상의했죠. 의상에 따라 촌스럽거나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거든요, 2%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야 했는데, 그 포인트를 ‘깔맞춤’으로 정했어요. 타이와 신발, 양말과 셔츠의 색이 중요하죠. 그게 또 한석율만의 멋이기도 하고요. 패션은 열정이에요. 하하.”
“저 진짜 연극에 욕심 많아요. 가장 재밌는 장르인 것 같아요. 대중들에게 좋은 그림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강하늘이 부럽기도 해요. 가슴 속에 연극을 하고 싶다는 게 꿈틀거리는 느낌이에요. 사실 모든 매체가 흥미롭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배울 점이 많잖아요. 제가 노력한다면 어떤 장르에서든 인정받는 배우가 될 수 있겠죠. 다양한 배우들과 많이 어울리고 싶어요.”
그는 또 “그냥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 경계없이 꾸밈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를 ‘돈 라이(Don’t Lie)’라고 표현했다. 왠지 짧은 영어가 더 와닿았다. 거짓말은 하지 말자는 뜻이다.
“학창시절부터 배우고 듣고 다짐했던 게 ‘거짓말 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