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개 초반 미국 영화 전문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높은 평점을 획득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평점이 떨어지긴 했지만, 주위에서 사람들이 흥분했을 때 “떨어질 거야. 진정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진짜 점점 떨어지긴 하더라”며 못내 아쉬운 듯한 표정이다.
최근 서울 종로 신문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내 생각을 좀 더 전폭적으로 집어넣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최고작은 아니어도 ‘재밌는 영화가 나왔다’는 반응이 내가 얻을 수 있는 적절함이었던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라스트 스탠드’는 헬기보다 빠른 튜닝 슈퍼카를 타고 돌진하는 마약왕과 작은 국경마을 보안관 사이에 벌어지는 혈투를 그린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10년 만에 배우로 복귀한 작품이다. 초반에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 비슷하다. 중반 이후부터에서야 김 감독의 색깔이 살아난다.
이유가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 간 김 감독이 무척이나 헤맸다.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 차이 때문이다. “언어의 핸디캡이 가장 클 줄 알았는데 시스템의 차이가 더 했죠. 감독의 현장 장악력이 떨어졌어요. 스튜디오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이 똑같은 권한을 갖고 있죠. 이야기를 하며 무언가를 반영시킬 때는 모두를 설득시켜야 했는데 그 과정이 힘들었어요.”
한국에서는 감독이 믿고 의지해야 할 조감독마저 같은 편은 아닌 느낌이라 더 외롭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과 제작 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중반 이후부터 내 통제 중심으로 되더라”며 “지속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니 촬영을 할 때 ‘김지운이 오케이면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오케이’라는 생각이 전해졌다”고 회상했다. 중반 이후 장면들에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가령, 옥수수 밭에서의 추격전이나, 계단 앞 총격 신, 조명탄으로 사람을 터트리는 것 등이 그의 생각이다. 김 감독의 생각은 슈워제네거의 액션과 조화돼 새로운 색으로 스크린을 수놓는다.
영화를 보면 슈워제네거의 고생이 보이는데, 그가 김 감독에게 붙여준 별명이 있을 것 같다. 그는 “특별할 건 없었다”며 “왜 이렇게 화를 안 내느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고 웃었다.
지난 19일 내한한 슈워제네거는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어떻게 신뢰관계를 쌓았을까.
“집요하게 뭔가를 얘기하고 디테일한 연기를 자꾸 시키니 다른 감독들과 다르게 느낀 것 같아요. 평범하게 넘어가려는 것도 다르게 하려고 했죠. 이번 영화는 기존의 슈워제네거 팬들도 좋아하고, 그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시선을 집중할 수 있는 저예산 아트 영화를 찍은 것이고, 봉준호 감독은 어쨌든 한국의 자본이 투입된 작품인 거죠. 프레임이 다른 거예요. 저는 미국에서 기본적으로 상업영화라고 할 수 있는 틀에서 한 것이잖아요. 일반적인 과정을 거쳤다는 것에 만족했고, 또 그것이 목적이었어요. 다음 영화에서 무엇을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됐다는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죠.”
김 감독은 사이파이(공상과학) 액션이나 사이파이 스릴러 등 3편 정도를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는 배우 강동원과 신민아와 함께 단편 ‘하이드 앤드 시크’(Hide&Seek)를 촬영 중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