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은 장혁 선배님의 느낌을 원하셨어요. 하지만 내·외적으로 (장혁과는) 절대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없다는 걸 알았죠.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음가는대로 ‘남순’에 몰입하니 언제부턴가 제 옷처럼 편안해졌어요. 내가 나인 걸 까먹을 정도로요.”
곱상한 외모에 우수에 찬 눈빛, 다듬어지지 않은 카리스마까지 갖춘 그가 이런 고남순을 연기하며 대세로 떠올랐다. 실제 고남순과 같은 과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꼭 들어맞았다.
“‘학교’ 시리즈가 워낙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어요. 캐릭터에 대한 특별한 설정 없이 스토리에 녹아들어갔던 것 같아요. 다만 조인성·장혁 톱스타 선배들과 오버랩이 되지 않도록, ‘하이킥’에서 선보인 캐릭터와는 차별화를 두기 위해 노력했어요.”
조인성 장혁 임수정 최강희 등 스타들을 대거 배출하며 신인 등용문으로 불린 ‘학교’. 13년 만의 부활인 만큼 막대한 관심이 쏠렸다. 소위 ‘장나라의 학교’로 불리며 시작했지만 사실상 ‘이종석의 학교’로 종지부를 찍었다.
“처음 가졌던 우려와는 달리 현장 분위기가 차츰 편안해지고, 예상 외의 시청률과 호평이 이어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또래 친구들이 많아 일터 보다는 실제 학교 같은 유쾌함이 있었고, 마음 먹고 달려든 만큼 만족스러운 장면들이 많아 뿌듯했어요. 이제야 뭔가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뻐요.”
‘학교 2013’은 배우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리얼하게 담아 안팎으로 호평을 받았다. 여기에 15%대의 시청률을 돌파하며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
“저 역시 학창 시절이 있었지만 작품을 통해 색다르게 느낀 게 참 많아요. 학생들 내면의 감정이나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했지만 놀라운 부분들도 많더라고요.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학교 분위기가 있고, ‘요즘 애들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구나’ ‘이런 일도 다 생기는구나’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사실 저 같은 경우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했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참 많은 일을 했어요. 16세부터 모델 일을 통해 연예계 입문했는데 학교생활을 충실하게 못 해 후회가 돼요. 학창시절 친구들이 평생 간다던데, 전 특별한 추억이나 우정을 나누지 못한 것 같아요. 예술 중학교에 입학해 출석일수가 모자라 일반고로 진학하게 됐고 이후에도 연예계 활동으로 인해 다양한 경험을 쌓지 못했어요.”
아쉬움에 가득 찬 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이번 작품에서 전작의 힘이 가져다 준 부담감 보다 더 그를 힘들게 한 건 바로 이 부분이다. 학창시절 뚜렷한 기억이나 경험이 부족해 몰입에 어려움이 컸다는 것.
그는 “살면서 평생 겪어 보지 않은 감정, 그리고 눈물을 이번 작품에서 다 쏟아낸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 선생님? 어두운 과거? 제가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연기하는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살면서 힘들다고 울어본 적도 없는데, 이번엔 울기도 참 많이 울었죠. 다행히 우빈이와는 원래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서로 의지하고 또 배워가면서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갈등 해소 후 남자끼리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려니 참 수줍고 오글거리기도 했죠. 하하!”
진~한 멜로가 정말 하고 싶어요
사실 ‘학교 2013’이 기존의 학교 시리즈에 비해 ‘멜로 라인’이 굉장히 미미했다. 극 중 남순은 전교 1등 완벽녀 하경(박세영)과 오묘한 감정을 나누지만 싶은 멜로신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종석은 “시나리오를 받은 초반에는 하경이와 멜로 라인이 확실하게 있었어요. 키스신까지 있었는걸요?”라며 장난스럽게 운을 뗐다.
“평소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어 기대를 많이 했어요. ‘키스 신’까지 있다고 하니 내심 떨리고 설렜는데 모두 수정돼버린 거예요. 감독님께 ‘남자랑만 멜로 하려니 힘들다, 하경이랑 멜로 라인 좀 엮어 달라’며 굉장히 졸랐던 것 같아요. 아쉬운걸 어떡해요!”
웃음을 머금은 채 이같이 털어놓더니 다시금 말을 바꾼다. 그는 “하긴, 제가 ‘남순’으로 살아본 결과, 남순 입장에서는 하경을 감히 대시하기에 엄두도 못 냈을 것 같아요. 너무 완벽한 그녀를 어떻게 감히…불가능한 일이네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특별히 장르, 캐릭터에 대한 편식은 없지만 멜로는 꼭 도전하고 싶은 분야에요. 로맨틱 코미디 보다는 진한 정통 멜로 작품을 꼭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착한 남자’ 같은? 생각만 해도 떨려요.”
아이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이지만 사실 이종석의 연기 열정은 대단하다. 바쁜 촬영중에도 또래 친구들의 작품은 늘 꼼꼼하게 모니터 한다는 그. 대본 숙지에 대한 준비도도 완벽한 수준이다. 암기를 마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제 나이 때 배우들의 출연 작품들은 꼭 챙겨봐요. 나와 비슷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경험을 쌓아온 그들이 어떤 감성으로, 연기하는 지 항상 궁금해요. 그들의 캐릭터, 연기를 분석하면서 때로는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해요. 탁월한 자극제가 되죠.”
사실 아이돌 같은 곱상한 외모가 그에게 늘 좋게만 작용한 건 아니었다. 남들 보다 빨리 모델, 예능 버라이어티, MC, 시트콤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정작 연기에 대한 기회는 생각처럼 빨리 오지 않았다. 그 동안 연기에 대한 그의 갈증은 극에 달했다.
“배우가 되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 외적인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얘가 연기를 하는 얘구나, 그냥 연예인이 아니구나’라는 걸 내내 보여주고 싶었어요. 난 정말 배우가 되고 싶은데…그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죠. ‘학교’가 내게 왔을 때 정말 이를 악물고, 칼을 갈며 달려들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는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솔직한, 동시에 내적인 고민과 고독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그에게 찾아온 행운은 이토록 강한 열망과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차기작은 영화 ‘관상’ 이다.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조정석 등 톱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이번 작품에서 이종석은 송강호의 아들 역할로 스크린 공약에 나선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사진 팽현준 기자/장소 제공: 파크앤느리게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