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엔블루-크라잉넛 사태의 엇갈린 주장들
크라잉넛의 고소 사실이 알려지자 엠넷에서 진화에 나섰다. 엠넷 측은 "누가 AR을 준비했느냐, 어떤 무대를 어떤 방식으로 요구했느냐의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한 사실로 부터 엠넷의 책임과 과실이 있음을 인정한다"며 "이번 문제에 대해 씨엔블루와 크라잉넛 측이 서로 오해가 없도록 책임지고 중재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주제작사에 DVD 제작을 위한 판권 판매에 대해서는 "씨엔블루 소속사와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씨엔블루 측은 "DVD 제작 및 유통에 대한 동의를 한 사실이 없으며 DVD 판매와 관련 수익을 정산 받은 바도 없다"고 반박했다.
크라잉넛은 씨엔블루 측의 주장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크라잉넛 측은 고소장을 통해 "씨엔블루는 2010년 8월 1일 경 피고들의 영상을 담은 ’씨엔블루 스페셜 DVD’를 제작하여 일본에 발매하면서 이 사건 곡을 실연한 것처럼 하였던 위 방송프로그램 출연영상을 수록하였고, 위 앨범을 일본에서 일화 7,560엔에 판매한 바 있다"고 적으며 씨엔블루(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가 DVD를 제작, 판매한 주체로 명시하고 있다.
씨엔블루 측은 "해당 DVD는 KBS미디어와 CJ E&M이 공동기획 한 것으로, 씨엔블루나 소속사와 무관하다"며 "해당 DVD의 판매는 부당하다는 내용증명을 유통사에 보내기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DVD 제작과 유통에 대한 계약과 합의가 있었느냐, 수익 정산이 이뤄졌느냐에 대한 쟁점은 크라잉넛의 주장대로 법원에서 사실 여부가 가려질 문제다.
○ 크라잉넛은 왜 씨엔블루 만을 저격했나?
이번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크라잉넛이 제작사 유통사와는 달리 씨엔블루에게 는 사전 의견 조율 과정 없이 소송 부터 진행했다는 사실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크라잉넛은 지난 해 이미 제작사, 유통사에 문제제기를 하고 갈등을 일단락 했지만 씨엔블루 측과 직접적인 대화를 나눈 것은 소장이 제출된 12일에서다.
이에대해 크라잉넛 측은 "씨엔블루와 사전에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씨엔블루가 어떤 이유에서든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소송의 본질이고 씨엔블루의 당시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며 "씨엔블루가 로커로서 영혼이 있는 친구들이면 어떤 상황에도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잘못에 대해 법적 처벌을 요구한다’는 원칙적인 태도는 유통사와 제작사에게는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크라잉넛은 유통사와 제작사를 상대로 원칙적인 대응 보다는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씨엔블루에게는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다른 두 가지 태도는 이번 소송의 목적이 금전적인 것이 아님을 방증인 동시에 이 사태를 공론화 시키킴으로써 창작자의 권리와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크라잉넛 측은 12일 소장 접수 이후 13일 보도자료를 통한 언론 보도 및 해당 날짜에 맞춰 보도될 매체 인터뷰를 미리 진행했다.
크라잉넛의 주장대로 아티스트의 명예회복이 목적이라면 유통사나 제작사에 대한 법적인 대응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실제로 크라잉넛 측은 13일 "DVD 제작사, 유통사에 해당문제를 제기해 합의를 끝내고 배상을 받았다"고 밝혔고 엠넷 역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크라잉넛 측에 금전적인 배상을 했다"고 전했다.
○ 크라잉넛의 주장 속에 배제된 사실은?
크라잉넛의 이번 소송 과정에서 씨엔블루가 당시 해당 곡을 어떤 이유로 부르게 됐느냐는 배경의 문제는 배제됐다. 법적인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이 배경이 결정적인 판결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지만 고의성 여부는 분명 법원 판결에서도 간과하지 않는 요소다. 특히 주장의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소송을 제기한 의도’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이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결정적이다. 크라잉넛의 주장대로 씨엔블루가 의도적으로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을 강탈했다고 한다면 소송 제기 자체에 충분히 설득력 있지만, 만약 의도한 바가 아니라면 소송까지 가기 전에 대화로도 충분히 풀수 있는 문제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엠넷과 씨엔블루 양측의 설명을 종합하면 씨엔블루는 당시 ’필살 오프사이드(Offside)’의 선곡 및 무대 연출 등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정한 것이 아니다. 엠넷은 월드컵 특집 ’엠카운트다운’ 무대를 연출하며 씨엔블루에게 응원가로 유명한 해당 곡을 요구했다. 씨엔블루가 무대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하자 가창까지 포함된 AR을 엠넷 측이 직접 제공했다. 신인 밴드가 방송사의 요구를 "로커의 영혼"으로 거절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엠넷 측이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도 이 같은 정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라잉넛 측은 "DVD 제작사와 유통사는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합의를 통해 배상을 받은 상태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 책임도 없다"며 "책임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본질을 흐리기 위한 엠넷의 물타기"라는 강경한 입장이다.
○ 씨엔블루는 인디밴드의 적인가?
크라잉넛의 주장처럼 씨엔블루가 어떤 배경에서든 타 아티스트의 권리 존중이라는 기본원칙에 소홀했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소송이 또 18년차 선배 뮤지션으로서 우리 음악계의 저작권 문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한 사실 확인과 가수와 방송사와 관계 등 배경은 배제되고 원론적 주장 만으로 해당 사안에 접근하는 것은 일면 감정적 대응으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이 논의가 인디씬과 메이저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양 진영의 감정적 대치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실제로 크라잉넛은 논의를 이 같은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크라잉넛은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디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크라잉넛이 이 문제를 유야무야 넘겨 버린다면, 이후에 창작 예술씬, 인디씬의 수 많은 후배들 에게 최악의 선례는 물론 약자 혹은 인디 라는 이유로 법적 사회적 금전적으로 당하는 경시 풍조가 생길 수 있기에 더욱 엄정히 대처하려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만약 씨엔블루 주장이 사실이라면 씨엔블루는 원치않는 무대를 방송사로 부터 암묵적인 강요 끝에 해야 했고 이 콘텐츠가 아티스트의 허락없이 판매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번 크라잉넛의 소송이 ’아티스트의 정당한 권리 찾기’라는 큰 명분과 대의 아래에서 제기 된 것이라면 씨엔블루는 크라잉넛이 뜻을 모아 연대해야 할 동료지 적이 아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