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 강론 (정진석 추기경)
오늘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께서는 지난 16일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우선 입원 기간 동안 추기경님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신 강남성모병원 의료진의 노고에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장례기간동안 김 추기경님을 위해 기도하고 조문해주신 모든 분들, 빈소를 지키며 봉사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추운 날씨에 몇 시간씩이나 조문 순서를 기다리며 추기경님을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장례 미사에 참석해주신 내외귀빈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미사동안 김 추기경님께서 늘 기도하신대로 우리의 세상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더 평화롭고 행복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 추기경께서는 항상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되어주셨습니다. 김 추기경께서는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사랑과 평화의 사도’ 였습니다.
우리나라가 힘들고 어려웠던 때마다 김 추기경님의 존재는 우리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김 추기경께서는 노환으로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와 인간미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안구를 기증하고 떠남으로써 착한 목자의 삶을 다하셨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한 사제이기전에 따뜻하고 상냥한 마음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세상에서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병원의 의료진에게도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방문객들에게는 항상 사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십시오”. 라는 말씀은 이제 다시 만나 뵐 수 없는 김 추기경님의 유언이 되었습니다. 이자리에 있는 우리는 김 추기경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본받아 감사하고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2006년 2월 제가 추기경으로 서임되는 발표가 있었을 때 김 추기경님께서는 “이제야 다리를 뻗고 잘 잘 수 있게되었다” 며 기뻐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저는 그분이 평생동안 얼마나 큰 짐을 지고 살아오셨는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던 1970년대 김 추기경님이 짊어진 십자가가 무거웠고 풀어가야 할 숙제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 때 마다 김 추기경님은 피할 수 없는 모든 고난을 기도와 대화로 풀어갔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말씀은 누구나 들어도 쉽고 감동적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자리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건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사랑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들은 시대와 환경의 변화를 꿰뚫고 하나의 주제로 모아집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존엄’입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님은 늘 입버릇 처럼 “적어도 인간으로서 정직하고 솔직하며 남을 존중하고 위할 줄 아는,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늘 역설하셨습니다.
또한 김 추기경님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사목 활동에서 우선수위를 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은 도시빈민들의 허름한 막사나, 노동자들의 시위현장을 가리지 않고 찾았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의 편에 선 것은 그분이 가진 가치관과 믿음의 실천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
1971년 성탄미사에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중에 정부에 대한 쓴 소리를 하는 용감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70~80년대 김 추기경님은 민주화운동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격동의 세월을 보내시느라 사제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겪은 심적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평생 고생하셨던 불면증도 그 때 생겼다고 합니다.
또한 김 추기경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소탈한 모습을 지니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항상 어린이처럼 해맑은 김 추기경님의 미소는 보는 이들의 마음도 훈훈하게 해주었습니다.
추기경님의 회고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은 우리 가운데 성자처럼 사셨던 촛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김 추기경님은 한평생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봉사하신 사제였습니다. 자신보다는 교회와 신자들을 돌보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사랑과 나눔을 우리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슬픈 상황 속에서도 한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죽음의 허무함과 슬픔은 어떠한 인간적인 언어로도 달래줄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비정하고 냉정한 현실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인생은 참으로 덧없고 허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신앙인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라는 부활 신앙 때문에 오히려 희망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매우 두렵고 엄청난 사건이긴 하지만 바오로 사도의 고린토 전서 15장의 말씀을 들어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우리의 죽음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서 정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은 이 믿음으로 주님을 따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죽음은 곧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부활 신앙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에게 죽음이란 희망의 문턱이요 시작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랑하는 김 추기경님을 하느님의 손에 맡겨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위대한 목자 김
다시 한 번 김 추기경님의 명복을 빌면서 추기경님이 믿고 바라시던 대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2009년 2월 20일
추기경 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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