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강영국 기자] |
중국에서 평양김치 전문가로 유명한 김순옥(53·사진)씨는 평양김치의 맛을 '쩡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쩡한 맛이 구체적으로 뭐냐"고 묻자 그는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속이 개운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을 말하는 거죠.마치 사과를 한 입 베어문 듯 말이에요."
김씨는 오는 2일부터 열리는 서울김장문화제에 김씨는 통배추평양김치 시연을 위해 초청돼 한국을 방문했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이 꽤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왔다.
김씨는 지난 15년간 중국 상해에서 옥류관을 줄곧 운영했다. 2002년 11월 북한과 합작으로 세운 옥류관은 일평균 250여명의 손님이 방문할 정도로 상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상해가 워낙 국제적인 도시잖아요.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왔죠. 한국 손님도 많았고요. 파는 메뉴만 200여가지가 넘었는걸요." 김씨가 말했다.
그는 상해 옥류관에서 주로 주방 살림을 책임졌다. 북한에서 파견온 지배인이 식당 홀을 관리하는 동안 김씨는 식재료와 메뉴 선정 등 요리와 관련된 일을 맡았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고민이 생겼다. 북한에서 파견 온 요리사가 3년마다 바뀌는데, 그 때마다 음식의 맛이 변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특히 어떤 메뉴에도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르는 평양김치 맛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요리사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김치 맛을 잡기 위해 제가 직접 나섰어요. 오시는 손님들마다 인상 깊었던 요리에 대해 물으면 이구동성 평양김치라고 얘기하는데 그 김치 맛이 달라지면 '큰 일' 나잖아요. 북한 측에서도 김치의 일관된 맛을 강조하는 만큼 사명감이 생겼던거죠."
이렇게 해 평양통배추김치를 직접 담기 시작한 김 씨는 주변에서 김 선생으로 통하며, 15년이란 세월 속에 하루도 빠짐없이 배추 40kg씩을 김장했다. 1년으로 따지면 1만4600t, 15년을 다 합쳐보면 22만t에 달하는 양이다. 배추 양만큼 1t 트럭이 일렬로 나열된 모습을 상상하니 숨이 턱 막혔다.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요"라고 답했다.
방대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평양김치 특유의 '쩡한 맛'을 유지한 그는 북한 인민 봉사총국으로부터 공로를 인정 받아 2012년 평양김치 개발 고문으로 위촉됐다. 최근에는 북한의 대표적인 김치공장인 류경 김치공장에도 다녀왔다. 평양김치의 감칠맛과 우수한 영양 성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김씨는 남한에서 평양김치 레시피를 공개할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다.
"남한과 북한이 김치를 담그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김칫소도 생강, 오징어, 새우젓, 멸치액젓, 마늘, 대파, 양파 등을 다 갈아서 만들고요. 다만 북한에선 배추 자신을 살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배추 자체의 아삭한 식감을 살리려다보니 김칫소는 적게 넣고, 양념부터 그렇게 맵거나 짜지 않은거죠."
배추김치 맛은 시뻘건 양념에서 오는게 아니라 배추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있다고 강조한 김씨. 그 맛의 비결을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 평양통배추김치 |
배추에 간을 잘 배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정작 6~8시간 초절임 후 흐르는 물에 빠르게 간수를 다 빼낸다고 했다. 평양김치가 남한김치에 비해 통통한 모양과 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비결이었다.
"저는 김치를 밥상에 올렸을 때 눈이 즐거워야한다고 생각해요. 김치를 썰면 산뜻하면서 포동포동 살이 오른 듯한 모습 말이에요. 그래야 딱 배추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배추를) 푹 절이지 않으니까 김치가 오래 돼도 질기지 않아요. 눈 뿐만 아니라 입도 남녀노소 다 즐거울 수 있는 비법이죠."
김씨는 서울김장문화제에서 이같은 맛의 비법을 통째로 다 보여줄 예정이다.대한민국 팔도 김치명인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명인의 김장간'이란 프로그램에서 그는 평양통배추김치 김장 시연에 나선다. 2일부터 4일까지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명인의 김장간은 누구나 와서 볼 수 있으며 전문가의 김치를 현장에서 무료로 시식해볼 수 있다.
행사 첫 날, 그것도 전문가들 중 처음 시연하는 김씨는 설레면서 긴장도 무척 된다고 했다. 평양김치 맛을 유지하려는 사명감에서 시작한 일이 이제는 남북평화의 상징으로까
"평양에 직접 가지 못해도 평양김치 맛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그 레시피를 다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러면 남한 집에서도 쉽게 담가 드실 수 있잖아요. 기쁜 마음으로 제 비법을 다 공개할거에요. 와서 구경하실거죠?"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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