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상비약 품목 확대방안을 놓고 약사 사회와 시민단체·편의점 업계의 논쟁이 치열하지만, 가장 밀접한 이해당사자인 제약업계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반의약품 품목의 주력 채널인 약사들의 눈치를 살피면서다.
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 아세트아미노펜 제제의 편의점 판매 비중은 지난 2016년 32.9%에서 2017년 40%로 증가했다. 이 제품의 판매 업체 관계자는 "편의점 매출은 늘었지만 전체 판매액은 비슷한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며 "편의점을 통한 매출이 늘어난 만큼 약국에서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편의점의 상비약 매출은 매년 증가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 결과 편의점의 의약품 매출은 지난 2013년 154억원에서 2016년 284억원으로 4년만에 2배 가깝게 늘었다.
편의점의 의약품 판매가 늘어나는 이유는 언제나 편하게 상비약을 구입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약국이 영업하지 않는 심야 시간대에 상비약이 필요한 소비자들이 편의점을 많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 CU가 최근 3년간 상비약의 요일·시간대별 매출을 분석한 결과 토요일과 일요일의 매출 비중은 40%에 달했다. 시간대별로 보면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의 구성비가 55%였다. 약국이 영업하지 않는 시간대에도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제약업계 입장에서 편의점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채널이다.
그러나 제약업계는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상비약 품목을 확대되는 문제를 놓고 약사 사회와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논쟁에 난처해하고 있다. 특히 개별 기업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경계했다. 섣불리 목소리를 냈다가 약사 사회로부터 반감을 사면 일반의약품 매출이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문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일반의약품도 비슷한 성분의 품목이 여럿 출시돼있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 온라인의약도서관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검색하면 2681개의 의약품 품목이 나열된다. 약국을 찾은 소비자에게 복약지도(의약품 관련 정보를 약사가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것)를 하며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약사 입장에서 특정 제약업체의 제품을 배제해도 대안이 많은 셈이다. 약사에 대해 철저한 약자의 입장인 제약업계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논쟁은 약사 사회와 시민단체·편의점업계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약사회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약의 부작용 위험성을 부풀려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국민건강 수호 약사 궐기대회'를 열고 "편의점에서 약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부작용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인 약사의 복약 지도 아래 약을 복용해야 부작용 위험을 줄일 수 있기에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 목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세트아미노펜 제제들이 꼽힌다.
그러나 편의점산업협회는 보건복지부의 발주를 받아 최상은 고려대산학협력단 교수가 수행한 '안전상비약품 판매제도 시행 실태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약사 사회가 지목하는 아세트아미노펜 제제의 부작용 발생율은 지난 2013년 0.0024%에서 201
약국에서의 복약지도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지난 2011년 상비약 판매시 약사들이 복약지도를 하는지 조사한 결과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는 해당 약품들은 특별한 복약지도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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