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스가 쌓여있는 곳으로 사람 무릎 높이에 바닥이 있는 경매대가 들어와 경매사가 올라간다. 그는 출하주 이름을 말한 뒤 래퍼처럼 추임새를 반복하다 해당 물건을 낙찰받은 중매인 번호를 외친다. 가끔 낙찰 전에 추임새를 멈추고 중매인들에게 "좀 더 눌러봐"라며 가격을 더 쳐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 중매인들이 손가락으로 응찰하던 시절 경매사들은 원하는 응찰가격이 나오지 않으면 중매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간혹 때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경매사가 못 본 척하며 손가락 응찰을 받아주지 않으면 물량 확보를 할 수 없는 중매인들은 폭언·폭행에 저항할 수 없었다. 경매장의 구석진 곳에서는 자신의 물건이 경매되는 과정을 보기 위해 방문한 농민이 경매사에게 슬쩍 봉투를 찔러주기도 했다.
전자응찰기가 도입되면서 경매사 권한은 축소됐고 산지 직거래와 온라인 판매 확산으로 도매시장이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지만, 여전히 서울 가락시장은 전국 농산물 유통 물량의 절반 가까이가 거쳐 가는 곳이다. 이 곳 경매에서 결정된 낙찰가는 농산물 가격의 표준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만큼 경매사는 농산물을 소비하는 우리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가락시장 내 300여 명 경매사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이영신 중앙청과 과일본부장(61)을 만나봤다.
↑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경매사들의 살아 있는 전설인 이영신 중앙청과 과일본부장. [사진 = 한경우 기자] |
경매장은 농부들이 보낸 농산물을 쌓아 놓고 중매인들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으로 경쟁하는 곳이다. 이때 최초 가격을 제시하고 중매인들이 제시한 가격의 낙찰 여부를 결정하는 경매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하지만 플랫폼(경매장)으로 농산물과 중매인이 모이지 않으면 경매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경쟁 플랫폼에 가입한 이용자들을 끌어오는 것도 쉽지 않다.
농민과 중매인들이 일하는 플랫폼을 중앙청과로 바꾼 것은 이 본부장이 제안한 새로운 과일 유통 방식이 그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줘서다. 당시 대형마트라는 새로운 채널이 유통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이 본부장은 이를 겨냥해 경매사 조직을 새롭게 꾸렸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생산자들에게는 소포장·고품질화를, 중매인들에게는 대형유통업체 거래선 확보를 각각 권했다.
이 본부장이 경매사 조직의 세대교체를 추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마케팅 기획력이다. 지난 2000년부터 경매사들을 한국생산성본부에 보내 마케팅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건을 어떤 것인지 파악해 생산자들이 그 같은 물건을 만들도록 유도해야 해서다. 시장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며 임원 자리에 앉은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본부장은 종종 경매대 위에 올라간다. 2년 전까진 마이크를 잡고 직접 추임새를 외기도 했다.
최근 1~2인 가구 증가로 과일 시장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유통업체는 직거래하는 농가와 함께 사각형 수박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20여년 전 과일 도매유통시장에서 소포장 트렌드를 처음 주도한 이 본부장은 과일 자체의 크기를 줄이는 데는 회의적이다. 과일의 크기와 당도가 비례하는 품목도 있어서다.
가구 소형화 이외에도 국내 과일 시장은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세계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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