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TV 드라마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문구를 차용하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 말은 리더의 숙명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리더라면, 자신이 쓰고 있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한 지혜를 갖출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이 리더이고 조직의 명운을 건 힘겨운 도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결전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엄습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견뎌내기 위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리더라면, 예상이라는 적응기제를 익혀둘 필요가 있다. 예상은 실제 사건이 발생하기에 앞서 그 사건이 야기하게 될 정서적인 문제에 대해 미리 대비해 둠으로써 미래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경감시키는 책략을 쓰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예상이라는 적응기제는 그 옛날 폰투스 제국의 미트리다테스 왕이 독을 점차적으로 조금씩 미리 맛보는 것을 통해 면역을 얻게 되었던 과정과 유사하다.
적응기제로서 예상은 인지적인 예측능력과는 다른 것이다. 예상의 기제를 활용한다는 것이 마치 제갈공명처럼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상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 다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보통 실감나게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지내는 일들을 미리미리 준비해 놓는다는 것이다.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에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한 사람도 제 죽을 것을 믿는 사람이 없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처럼 사람들은 미래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이 자명한 일들에 대해서조차 사전에 대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대비를 안 한 채로 있다가 막상 문제가 닥치게 되면, 당황해서 자기 실력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낸다. 이런 맥락에서 예상은 누구라도 능히 해낼 수 있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매우 드문 적응기제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 내었던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는 예상의 대가였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예상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젠하워는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전했을 때 다음 날 공격을 개시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리더로서 책임감과 불안감 그리고 긴장감에 짓눌린 채 지내기 일쑤였다. 이 고통스러운 시기에 전쟁 스트레스는 그의 판단력과 자신감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특히 그는 젊어서부터 크론병 때문에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심한 복통과 하루 20회가 넘는 설사와 고열 증상으로 고통 받았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아이젠하워는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해 나갔다. 그 노하우는 바로 다음 날 겪게 될 불안, 긴장 그리고 부담감 등의 정서적인 어려움들을 전날 밤에 하나씩 짚어 보는 예상의 기제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가 정서적인 고통을 하루 앞서 겪으면서 털어버리고 나자 마치 면역이 생긴 것처럼 다음 날 실제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는 부하들에게 정서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아이젠하워는 악천후로 인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해 설사 작전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밝히는 편지를 쓰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미래에 닥치게 될 정서적인 어려움을 한 발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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