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상용 오렌지팩토리 대표 |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 일찍 일어나 밤 늦게까지 5년여를 일하면서 한푼 두푼 돈을 모아가며 20대를 맞이했다. 이때부터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거리 옷장사에 나섰다. 도매상에서 품질이 괜찮은 옷을 일명 ‘이민가방’에 넣어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펼쳐놓고 팔았다. 품질 좋은 옷을 최소 마진으로 정직하게 팔면, 팔릴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냉혹한 세상살이에서 통했다. 수년 동안 더운 날, 추운 날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모은 종잣돈으로 천막 쳐놓고 물건 파는 ‘땡처리 기획전’을 시작했다. 의류 재고품을 현금으로 싸게 구입해 떨이로 되파는 건데, 당시로선 파격적 행사였다. 이때만해도 최저가를 지향하는 아웃렛이나 대형마트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
옷값에 거품이 상당하던 시절, 무조건 마진을 10% 이내로 해 팔자 더딜지라도 이익은 조금씩 불어났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1988년 회사를 창업하고 마침내 2000년에 지금의 ‘오렌지팩토리(Orange Factory)’ 1호점을 출범시켰다. 현재 전국적으로 69호점(모두 직영)까지 확장하면서 어느덧 중견기업이 됐다. 의류업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오렌지팩토리 매출은 2012년 2100억원, 2013년 2250억원, 2014년 2380억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상품 기획부터 생산, 판매까지 직접 해 생산비용을 최대한 낮추고 중간유통 마진을 없애 싸게 팔아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결과다.
이 ‘중졸 성공신화’는 전상용 오렌지팩토리 대표(52) 얘기다. 갖은 고생을 하며 회사를 일군 탓에 전 대표는 돌다리를 수십번 두드려가며 일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는 그 어떤 투자 제안도 거들떠 보지 않고 ‘나홀로 경영’에 전념했다. 1년 전 쯤엔 한 중국 대형그룹 관계자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무려 ‘2조원의 투자 보따리’를 제안했는데도, 그는 만나주지도 않고 문전박대를 했을 정도다. 중국의 투자 유혹에 사기 당한 업체가 많다는 선입견 탓에, 평생 일군 사업이 일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나 오렌지팩토리가 중국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 것이라는 지인들의 끈질긴 설득을 일단 믿어보기로 하고 협상을 시작했다. 중국의 구애가 시작된 지 거의 1년 만이다. 파트너는 신다(信達)그룹. 1조3000억 위안, 한화로 225조원의 자산을 관리하는 중국 2위 규모 회사다. 중국 내 국가개발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공상은행, 교통은행, 상하이은행 등 다수 금융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사정을 잘 모르는 전 대표에게는 그저 생소한 그룹일 뿐이었다.
신다그룹이 오렌지팩토리에 손을 내민 이유는 트래드클럽, 모두스 비벤디 등 16개의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질 높은 제품군 구성과 뛰어난 가격경쟁력, 대규모 매장운영(ERP) 시스템과 노하우 등이 중국 패션유통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금 중국은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가격대가 높은 백화점 상권만 살아남고, 나머지 중소규모 백화점과 매장들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결정적으로 신다그룹의 마음을 산 건 전 대표의 독특한 성공 이력과 경영철학 때문이다.
전 대표는 보따리상 시절부터 지금까지 “브랜드 옷은 너무 비싸다. 나는 돈이 없는 사람들도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서 오렌지팩토리를 만들었고, 계속 그럴 것이다”는 소신을 지켜오고 있는 점을 중국은 높이 평가했다. 그가 오렌지팩토리 매장 내 모든 화장실에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 놓고 고객과 직접 소통을 한다는 점, 매년 소방공무원 50% 할인행사 등 다양한 나눔활동을 한다는 점은 이미 중국이 물밑 조사를 통해 파악한 터였다.
협상 녹취록에 따르면 신다그룹 관계자는 “우리는 전 대표에게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며 “지금 시진핑 정부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서민들도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라는 방침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오렌지팩토리를 파트너로 삼고 싶었고, 그와 함께 한다면 (중국에서) 매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전 대표는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마침내 지난 2월 27일 베이징에서 신다그룹과 최종 계약을 했다. 오렌지팩토리가 올해 1차로 10억 위안(약 1755억원)을 합작법인 자본금으로 투자받는 등 2020년까지 총 2조원을 투자받기로 한 것. 2조원의 용도는 일종의 초기 운영비다. 오렌지팩토리가 중국 시장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하고, 운영방식 및 상품(의류)을 중국에 공급하는 데 쓰인다. 그런데 계약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왜 오렌지팩토리가 중국에서 ‘왕대박’을 터트렸는지 알 수 있다.
중국은 올해 11월부터 2020년까지 한국에 있는 오렌지팩토리 매장을 원형 그대로 중국에 300개 오픈하는 조건으로, 매장에서 파는 의류를 오렌지팩토리에서 독점 공급받기로 했다. 또 오렌지팩토리 상표 사용료로 중국 내 매출(연 5조원 예상)의 5%를 지급하기로 했다. 모든 매장 부지 매입과 시설투자는 중국이 부담한다. 따라서 300개 매장이 다 들어서는 2020년부터는 오렌지팩토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만 따져도 연간 2조원을 웃돈다. 상표 값만으로도 매년 2500억원 안팎을 챙기게 된다.
전 대표는 “국내 의류 제조·유통업체 중 로열티까지 받아가며 의류·콘텐츠·프로세스를 통째로 수출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일 것”이라며 “특히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가서명 이후 의류·문화 부분 최초의 성과라
[민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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