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침 일곱시부터 레스토랑에 부지런히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일한 공통점은 모두 실연을 당했다는 사실, 목적은 식사보다는 위로에 있습니다. 하루가 막 시작되는 시간 한데 모여 서로의 상처를 나눕니다. 번뜩이는 상황 설정으로 흥미를 끄는 소설가 백영옥의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입니다. 지난 2012년 출간 이후 13년 만의 개정판으로 섬세한 연애 감정 묘사와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주목받았던 이야기를 매만지고 표현을 다듬어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주요 인물은 항공사 승무원 사강, 컨설팅 강사 지훈, 결혼정보회사 직원 미도입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실연 기념품’을 건네며 이별의 흔적을 공유하고,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인연을 맺어갑니다. 그들에게 실연은 단순한 감정의 붕괴가 아니라 삶의 궤도를 비틀고, 잊고 있던 과거를 끌어올리며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내적 훈련입니다.
오전 일곱 시에 시작하는 소설은 '오후 일곱 시'에 끝납니다. 열두 시간의 시차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을 마주한 이별의 아침부터 '헤어져야 만나고, 만나야 사랑이 다시 시작됨'을 깨우치는 이별의 저녁까지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주인공의 시선을 교차하며 전개되는 소설은 이별이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는 일의 '시작'일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사랑을 잃고 방황하지만 서로를 통해 다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헤어짐의 아픔을 겪어본 이들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장으로 가득합니다.
출간 직후 영화화가 확정돼 배우 수지와 이진욱 출연, 임선애 감독 연출로 이르면 내년 개봉 예정입니다.
![]() |
<작은 땅의 야수들>로 2024년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가 신작 <밤새들의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가난과 결핍을 딛고 세계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지만 그에 따른 대가 또한 껴안아야 하는 예술가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비추는 이 소설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되묻습니다.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떠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믿으며 살아온 무용수 나탈리아.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아버지처럼 그는 도시에서 도시로,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끊임없이 떠나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파리 세 도시를 배경으로 발레계의 야망과 경쟁, 예술과 정치가 충돌하는 치열한 무대 위에서 그의 화려하고도 외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세계 최고의 무용수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나탈리아는 가장 높이 날아오른 순간, 가장 깊은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격렬한 통증을 동반하더라도 극한의 한계까지 자신을 밀어붙여 끝내 증명하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은 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순간의 기록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과 되돌릴 수 없는 감정의 파동을 지나온, 혹은 지나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야기에 자신의 인생을 겹쳐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작품의 출발점은 언제나 '마음이 아파오는 느낌'이라는 김주혜 작가의 문장들은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내밀한 묘사로 내 안의 가장 복잡한 감정을 누군가 대변해주는 듯한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것입니다.
![]() |
지난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파도의 새로운 양상>,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을 펴낸 김미령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제너레이션>으로 돌아왔습니다.
김미령의 시에는 늘 기억이 자리합니다. 이전 시집에서 찰나에 깃든 무한의 풍경들로 '나'에 깃든 무수한 타인의 세계를 보여줬던 그가 이번에는 ‘세대(Generation)’라는 훨씬 더 거대한 지도를 꺼내들었습니다. 한 개인의 성장과 노화를 뛰어넘는, 공통의 경험과 시간이 축적된 단위인 '세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기억이 어떻게 흐르고 얽히는지 탐험합니다.
<제너레이션>에서의 기억은 정물 같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광활하고도 생생히 살아 있는 풍경이 됩니다. 이 풍경은 이수명 시인의 말처럼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기억의 산물' 그 자체,우리는 기억의 바깥에서 구경꾼이자 타자가 되어 그것을 구경합니다.
김미령은 시간을 단순히 과거·현재·미래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호하고 혼란스럽지만, 미묘한 자유로움으로 넘실대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기억과 세대가 어떻게 맞닿고 교차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알려줍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기억과 시간을 안고 살아가는 독자에게 권합니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