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GPT]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작 ·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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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
새해를 맞던 패기로운 다짐도 잠시, 만사 제쳐두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던 하루쯤 없으신가요. 문득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등바등 사나, 그저 숨만 쉬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을 때. 소파에 구겨져, 이불에 파묻혀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을 때. 살아있기조차 귀찮게 느껴질 때…. 하지만 세상은 좀처럼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카톡' 알림이 뜨고, 전화벨이 울리고, 긴 연휴 후 출근날은 기어이 다가옵니다. 씩씩하게 출근한 직장 내 지시에는 그 모든 무기력이 전생이라는 듯 가증스레 답합니다. "넵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돈 받고 고용된 주제에 감히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버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직장인은 상사의 합리적인 요구들에 시종일관 뻔뻔스레 도합 약 30회 이상 선언합니다.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갓생 (god生, 하루하루 부지런히 보내며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이라는 뜻의 신조어), 'Just do it' 정신이 추앙받는 '파이팅해야지'의 시대에 읽기는 수상한 소설, 그래서 더 끌리는 <모비딕>의 작가 하먼 멜빌의 1853년작 중단편 <필경사 바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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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연이은 파격적인 선택의 주인공은 바틀비, 월스트리트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필경사'입니다.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1800년대 미 금융경제의 중심지에는 돈 벌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복사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했던 이 단순직은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일로 쉽게 말해 남의 말 베껴쓰기, 이후 제대로 적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기입니다. 능동성이나 주체적 판단 같은 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기계적인 과정은 화자인 변호사에 따르면 '메마른 견과 껍데기'와 같습니다.
추가 채용으로 뒤늦게 합류한 바틀비는 초반 며칠 간은 누구보다 묵묵하고 성실히 주어진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러다 출근 사흘째, 돌연 모든 요구를 거부합니다. 업무 지시뿐 아니라 밥을 먹으라는, 집에 가라는, 자초지종을 이해하고 싶으니 어떤 사정이라도 말해 달라는 변호사의 정중한 제안에도 반응은 같습니다. 계속되는 파업에 일을 하지 않을 거면 회사를 떠나달래도 말합니다. "떠나지 않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끈질긴 추궁에는 눈 하나 꿈뻑하지 않은 채 침착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응수합니다. "그 이유를 스스로 보지 못하시나 보네요."
직장에서의 유용성을 다한 바틀비가 여러 난관을 거쳐 향하게 되는 곳은 종국에는 감옥, 그리고 저승입니다. 감옥에서조차 '식사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사내의 사정에 대해 작가는 마지막까지 속시원한 설명을 내놓지도 않습니다. 대신 사무실에 오기 직전 직업에 대한 소문 하나를 전해줍니다. 그는 우편물 사서(死書) 담당, 수취인이 사망해버려 미처 전달되지 못한 우편물 소각을 도맡다 해고당했다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폐기물이 되어버린 것들을 매일같이 마주하며 '절망이 체질'이 되어버린 걸까요? 하나하나 소중했을 사연들을 집어삼키는 붉은 화염을 바라보고 있었을 바틀비의 머릿속이 궁금해집니다. 언제 수명을 다할지 모를 '죽으면 썩을 몸'을 돈을 벌기 위한 기계적인 노동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 저항의 결말이 종국에는 굶어죽는 것이더라도 '선택'이라는 것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 않기로 한 한 인간은 부적응자로 낙인 찍히고 추방됐습니다. 수 세기 간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온 자본주의의 민낯이기도 합니다.
사무실에는 바틀비 외에 두 필경사가 더 있었고 배분받은 필사를 수행하며 변호사를 도왔습니다. 재밌는 건 둘은 소설 내내 별명으로만 불리웠다는 점입니다. 실명으로 회자되며 세상을 떠난 후에도 긴 여운을 남기며 제목이 된 존재는 바틀비 뿐이었습니다. 둘은 모두 하루 중 반나절씩은 꼬박 알코올에, 신경 과민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기도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따르면 고장나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하면 해고되던 당대 현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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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의 원문. 'I would prefer not to.' |
여기저기서 출처불명의 ‘해야만 하는 것들’ 목록이 쏟아지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새해마다 유난스레 호흡을 가다듬고 그간 저마다 어렵게 느껴졌던 무언가를 해내보리라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한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건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가' 같습니다. 모든 게 과잉돼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기꺼이 해내지 않기로 하는 것. 그건 무기력만으론 치부할 수 없는 적극적인 비타협이자 자기 결정권 행사로, 바틀비를 바틀비로 남게 한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할 자유로 '해야만 할 것들'의 목록을 줄여나갈 때 삶의 모양은 오히려 더 명료하고 고유해질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폭력에의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