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공연장 온도가 높아지는 건 단 한 소절이면 충분했다. 김동률이 '문 라이트(Moonlight)'를 부르며 등장하자 따뜻한 음성이 곧 공연장 구석구석으로 스몄다. 콘트라베이스 같은 목소리가 한파에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세월에 유행은 녹슬지만 김동률의 음성은 여전했다. 언제 어디에서 마주쳐도 믿고 살 수 있는 명품처럼.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애틋한 로맨스 영화가 떠오르는 사랑스러운 선율"을 이 노래의 강점으로 꼽은 바 있다.
물론 그 선율의 로맨틱함이 완성되는 건 김동률의 중저음과 만났을 때다. 1993년 듀오 '전람회'로 데뷔한 그는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남성 보컬의 새 지평을 열었다. 높은 키의 노래를 잘 부르는 게 가창력의 기준처럼 여겨지던 시기, 그는 듣는 이를 감동시키는 요소는 음의 높낮이가 아니라 울림이라는 걸 증명했다.
공연 초반 레퍼토리는 '사랑한다는 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로 채웠다. 두 곡 다 김동률 팬층을 크게 넓힌 전 국민적 히트곡이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는 2001년 발표한 정규 3집 '귀향' 타이틀곡으로 이듬해 김동률에게 지상파 음악 방송 첫 1위를 안겨주기도 했다.
김동률은 한 가수가 품을 수 있을 법한 꿈은 모두 이뤘다.
1993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과 특별상을 동시에 받았다. 이소은, 이적, 하림, 양파, 존박에 아이유까지 당대 가장 색깔 있는 목소리로 정평 난 아티스트들과 컬래버레이션했다.
아이돌 그룹 위주로 돌아가는 2010년대 음원 차트도 그에겐 걸림돌이 아니었다. 김동률은 공연 당일 낸 '동화'(피처링 아이유)까지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하며 발매만 하면 차트 1위를 달성하는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 김동률이 무려 3년2개월 동안 콘서트를 쉬었다. 뜻밖에도 '슬럼프'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어느덧 음악 한 지 25년 정도가 됐어요. 이렇게 오래 음악을 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은 이미 다 이뤘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미 오래전에 정점을 찍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변화를 요구하는 일각의 목소리도 그에겐 부담이었다. 앨범을 낼 때마다 듣게 되는 '김동률 음악은 똑같다'는 이야기가 혼란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그는 김동률 음악의 가치는 '항상성'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 지난 7일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가수 김동률이 노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뮤직팜] |
김동률 음악의 큰 뿌리를 지키면서도 그는 여러 색채로 디스코그래피를 칠해왔다. 이날 공연장에서는 발라드와 탱고, 뮤지컬풍 곡을 넘나드는 김동률의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중저음에 강점이 있는 그지만 '답장'과 '기억의 습작'처럼 고음으로 치닫는 노래의 매력도 유감없이 뽐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와 함께 노래하던 김동률은 '그 노래'를 부를 땐 연주와 마이크를 전부 물린 채 육성만으로 1만1800㎡ 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팬들 사이에서 '빛과 소리의 향연'으로 추억되는 김동률 콘서트는 7~9일 사흘 분이 전부 매진됐으며 3만여 관객이 들었다.
"저는 앞으로도 변화를 위한 변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