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컬처 DNA] 작가 지망생의 잇템(꼭 가지고 싶은 아이템)은 역시 대가(大家)의 노트일 것이다. 2007년엔 '영화 거장들의 비밀 수업'을 표방한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라는 책이 나와 감독 지망생들 사이 필독서로 떠오른 바 있다. 지난달 28일 재단법인 카카오임팩트가 개최한 '다음웹툰 크리에이터스데이'에서 웹툰 거장들이 자신의 창작 노트를 공개했다.
↑ 강풀 작가가 지난 달 28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크리에이터스데이 2018`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제공=카카오 |
◎ 강풀의 노트(대표작: '브릿지' '바보' '26년')
■ 스토리 짜는 데만 8개월 걸린다
무엇보다도 이목을 끈 건 강풀 작가(44)였다. 국내 최고 인기 만화가 강풀은 스토리가 탄탄한 웹툰을 그리기로 유명하다. '바보' '순정만화' '이웃사람' '26년'을 비롯한 여러 한국 영화가 그의 웹툰을 원작으로 삼았다. 컨베이어 벨트라도 갖춘 듯 다작하는 강풀은 그러나 "스토리 작업에만 8개월이 걸린다"는 말로 청중을 놀라게 했다.
"중요한 건 내 만화가 말이 되냐는 거예요. 주변인에게도 '이 만화가 말이 되냐'고 물어봐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댓글이 달려요.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진행하지 않아요. 독자들이 공격할 만한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를 쓰는 데만 8개월이 넘게 걸립니다."
강풀은 그림체가 유려한 작가는 아니다. 그는 "만화는 그림과 글로 구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림이 다소 약하다면 완벽한 스토리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600여 장에 달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두고, 그것을 추려서 만화를 만든다고 밝혔다.
■ 캐릭터+사건=결말
강풀은 캐릭터와 사건이 만나 결말이 나오는 게 스토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셋 중 하나가 약하면 재미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캐릭터는 설득력을 갖춰야 하고, 사건은 흥미로워야 하고, 결말은 타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셋 중 하나라도 부실할 경우 이야기가 재미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해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쓰려고 했을 때, 한마디로 요약하는 훈련을 해보세요. 한마디로 요약이 안 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해요. 요약이 되면 좋은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더해 재미까지 있으면 자신감을 가져도 좋고요. 제 작품 '브릿지'의 경우 '시간능력자와 신체능력자의 만남'이라고 요약할 수 있어요."
↑ 강풀 작가는 그림 실력이 다소 처진다고 해서 만화가의 꿈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카카오 |
■ 언제나 실전, 습작할 필요 없다
강 작가는 굳이 습작을 할 필요가 없단 말로 좌중을 한번 더 놀랬다. "백번의 습작보다 한번의 실전작이 낫다"고 조언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뭐냐면요. 프로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자기 지갑 열고 일하는 사람이에요. 프로는 돈 받았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습니다. 돈을 안 받으면 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죠. 프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실전작품을 하는 거예요. 단 한 명에게라도 보여줘야 해요. 습작은 백 개가 쌓여도 작품이 안 됩니다."
그는 작가가 예술가연하는 걸 경계한다. "작가는 직업의 하나일 뿐"이라며 "쓸데없이 작가부심을 부리지 말라"고 도움말했다.
"저는 작업실에 출근하잖아요. 그럼 딴짓을 안 해요. 컴퓨터를 켜고 바로 일해요. 그건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작가들 워밍업한다고 커피 마시고 그러잖아요. 이메일 보지 말고 바로 작업해야 해요. 그게 훈련이 되면 훨씬 효율적인 작업을 할 수 있어요. 많은 작가들 하루에 열 시간 작업한다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저는 출근하면 동료하고 인사도 잘 안 해요."
↑ 강풀 작가는 웹툰 하나의 스토리를 짜는 데만 8개월 동안 매달릴 정도로 빈틈 없는 작업을 추구한다. /사진제공=카카오 |
◎ 강형규의 노트(대표작: '라스트' '왈퐈' '로렌스를 구해줘')
■ 가난을 견디는 용기를 가져라
몰입감 넘치는 웹툰을 그리는 작가엔 항상 강형규(36)의 이름이 오른다. '로렌스를 구해줘' '라스트' '왈퐈'까지. 그가 그린 인물들은 불빛만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달린다. '라스트'는 종편에서 느와르 드라마로 방영됐으며, 이 작품에 출연한 윤계상은 '인생 연기'를 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만큼 원작 캐릭터가 생동감 넘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한 웹툰 작가 지망생이 '인기 작가가 되기 전까지 경제적 어려움을 어떻게 견뎌내냐'고 묻자 그는 "재화에 대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저는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연봉을 180만원 받았어요. 그런데도 택시를 탔죠. 작업을 하기 위해선 허리를 보호해야 했으니까요. 저는 한때 사채업자한테도 쫓겨봤어요.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든 삽니다. 재화에 대해선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일 때는 주변에서 빌려야죠. 저는 불안감은 건강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강형규 작가는 창작자가 휴식을 등한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진제공=카카오 |
■ 마감을 통제하는 삶을 살아라
강형규 작가는 휴식 시간을 정해두고 꼭 지켜서 쉬라고 했다. 마감이 끝난 후 쉬려는 생각보다는 정해진 시간에 휴식하는 게 건강한 태도라고 했다. "마감에 쫓기는 삶보다는 자기 삶을 통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마감이 한 달이 남든 보름이 남든 3일이 남든 결국 작가에겐 하루가 부족하거든요. 작가에겐 언제나 하루가 부족해요. 그러면 놀고 나서 하루가 부족하거나, 진작부터 일하면서 하루가 모자라나 똑같아요.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일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속 시원하게 쉴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해서 쉰다는 건 정말 중요한 거예요. 일이 끝나서 어쩔 수 없이 쉬는 게 아니라요."
그는 휴식을 단련이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건 작가를 성장시킨다고 했다. 작업을 장시간하다 보면 작업의 스킬은 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매너리즘이 생긴다. 그래서 강 작가는 책도 읽고, 대학교도 가고, 다른 동네로 놀러가기도 한다. 다만, 휴식 시간에 절대 안 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웹서핑이다. 너무 소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업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작업에 매몰되기보다는 일상을 채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작업에 매몰되면 기회가 없어요. 그림을 그리는 건 결국 자신을 보는 것이니까요.저는 다른 사람 웹툰을 많이 보지도 않아요. 내 안에 있는 예술적 리듬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 1만3000명 신청 몰린 '크리에이터스데이'
이 밖에도 '오무라이스 잼잼'의 조경규 작가는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웹툰 작가로 사는 행복감을 전했다. 작가들의 이번 강연은 재단법인 카카오임팩트가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개최한 '크리에이터스데이 2018'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브런치, 다음웹툰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