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는 어렸을 때부터 뭔가에 굶주린 사람처럼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종종 이렇게 말했었다. “난 시커멓게 될 때까지 책을 읽고 싶어.” 그녀에게 독서는 감각적인 행위였다. 그녀는 “사랑은 육체적인 것이다. 독서도 그렇다”고 적었다. 책을 읽으려면 한 장 한 장 넘기며 몸체를 만져야 한다. 책은 냄새를 풍긴다. 종이냄새, 잉크냄새, 퀘퀘한 지하실 냄새…. 시간이 흐르면서 책은 주인의 흔적도 보여준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녀 시절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책들을 올려놓은 탁자가 보였다. 나는 책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얼른 가지고 가서 읽고 싶은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친구에겐 이런 편지를 썼다. “때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해. 천국, 그곳은 피곤해지지 않고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고.”
1917년 3월 23일 결혼한지 5년된 울프 부부는 19파운드 5실링 5펜스(오늘날 89만원 가량)짜리 수제 인쇄기를 사들여 자신의 글을 직접 출판하기 시작했다. 때론 거실에서, 주방에서, 지하 창고에서 책을 찍어냈다. 출판사 이름은 ‘호가스 프레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이렇게 썼다. “버지니아는 자녀를 갖기 원했다. 하지만 의사와 남편은 그녀의 정신질환 때문에 임신을 염려했다. 부부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리베리(liberi·자녀를 뜻하는 라틴어) 대신 리브리(libri·책)인 셈이었다.”
마릴린 먼로는 수영복 차림으로 아일랜드 작가 J.조이스의 장편소설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사진을 1955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을 발표하기 전만 하더라도 지성과는 거리가 먼 섹스 심벌 이미지가 강했다. 저자는 “(마릴린 먼로를 찍은 여성 작가)이브 아놀드의 사진들은 독서라는 행위에 섹시한 분위기를 불어 넣는다”며 “이 사진들은 순응과 반항이 섞인 무시무시한 카메라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사진 작업은 여성에게 백치미를 강요하는 스튜디오 시스템과 상업문화에 한방 먹인 것이고 자꾸 추상화로 나아가는 고급문화에 한방 먹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마릴린 먼로는 문학과 연극, 그리고 책에 관심이 많았다. 1904년 여름 영화 홍보차 미국을 순회할 때 그녀는 저녁이면 호텔에서 도스트예프스키, 마르셀 프루스트의 명작들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까지 읽곤 했다. 마릴린 먼로의 세번째 남편이자 극작가 아서 밀러는 훌륭한 독서 멘토였다. 아서 밀러는 ‘존경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질문에 에이브러햄 링컨을 조언하며 칼 샌드버그가 쓴 전기를 추천했다. 마릴린 먼로는 이 책과 링컨의 초상을 죽는 날까지 간직했다. 연기 코치 나타샤 라이테스는 이런 그녀를 두고 훗날 “다른 사람의 지적 토대로부터 좋은 것들을 취하는 정신적인 비치코머(해변에서 물건을 줍는 사람)”라고 말했다.
저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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