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내내 때리고 부수고 구른다. 욕설과 피 비린내가 뒤엉켜 쏟아지는데 온몸이 움찔거린다. 치고 박고, 엎치고 메치다보니 어느새 123분이다.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영화 ‘베테랑’이 통쾌한 싸움판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정의로운 형사와 재벌의 대결이다. ‘죄짓고 살지 말자’는 신념으로 똘똘뭉친 단순한 형사 서도철(황정민). 가난한 화물기사가 억울하게 죽은 사건에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개입된 것을 알게 된 그는 “건드리면 다친다”는 조태오를 향해 수사의 망을 좁혀간다.
‘베테랑’에서 사나이들은 현실에 치인다. 서 형사는 주택 대출 이자를 걱정하는 아내의 한숨에 작아지고, 오 팀장(오달수)은 상사(경찰서장)의 짜증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을 뜻하는 속어)가 없냐”며 호기롭게 외친다. 자신감은 좋지만 상대는 재벌. 이들은 승산없는 싸움이지만 죽기살기로 덤벼본다. “수갑 차고 다니면서 쪽팔리기 싫으니까”.
서 형사와 동료들은 해봐야 안될 싸움을 기어이 해볼만한 판으로 만들어버린다. 영화의 재미는 여기에 있다. 조태오는 법, 돈, 권력을 총동원해 수사를 억누르지만, 서 형사 일행은 악과 깡으로 열세를 반전시킨다. 다윗의 짱돌을 맞은 골리앗이 휘청거릴 때의 쾌감이 이 영화에 흥건하다.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조태오의 악행이 거듭될수록 서 형사를 응원하는 마음은 커져만간다. ‘갑을 싸움’이 첨예한 사회의 모습도 겹쳐진다. 현실에선 을의 반격이 흐릿하지만 스크린에선 통쾌한 응징이 펼쳐진다.
후끈한 액션을 기대해도 좋다. 영화 후반부 서도철과 조태오가 벌이는 최후의 한판은 넋놓고 보게 된다. 꽉 막힌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연쇄 추돌하고, 인파가 넘실대는 번화가에서 노점(露店)들이 무너진다. 두 배우가 피 튀기게 싸우면서 빚어내는 액션의 화음이 경쾌하다. 황정민과 유아인은 ‘영화용 무술’이 아니라 실제 싸움에 가까운 합을 연출했다. 이 장면 촬영에만 일주일이 걸렸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감독, 배우야말로 ‘베테랑’이다. 연출을 맡은 류승완 감독은 지난 20년간 갈고닦은 특기를 이 작품에 집약했다. 팽팽한 형사물(‘부당거래’)에 호쾌한 액션(‘짝패’)을 녹이고, 팔딱거리는 생동감(‘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을 불어넣었다. 형사물의 조미료같은 차진 대사가 빠질 수 없다. “같은 팀원끼리는 방귀 냄새도 같아야지”, “기자가 새벽기도 갔다가 영빨 받아 기사 쓰냐” 등 두고두고 웃게되는 어록이 많다.
황정민, 오달수, 천호진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 위에서 영화는 매끄러운 리듬으로 흘러간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폭
물불 안가리고 덤비는 뜨거운 사나이들이 의연한 독립군(최동훈 감독의 ‘암살’)의 저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다음달 5일 개봉.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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