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민폐관객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걸까”
최근 공연계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신조어가 있다. 이른바 관크, 일명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인 이 용어는 관람에 방해를 주는 다른 관객들의 행위를 뜻하는 속어다. 여기서 이용되는 크리티컬(critical)은 주로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힐 때 쓰였던 용어로 최근에는 ‘관객’과 만나면서 관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일각에서는 ‘관객 크리티컬’의 줄인말이 아닌 ‘관객 크레이지(crazy)’의 줄임말이 아니냐는 뼈 있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최근 관크에 대한 피해사례들이 줄지어 등장하고 있다. 공연이 시작된 이후 미처 바꾸지 못한 핸드폰 벨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운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예절을 어겨 발생한 관크에서부터 당사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큰 머리와 입·발냄새, 큰 숨소리 등 사소하면서도 생리적인 관크까지 그 유형은 점점 더 사소하면서도 세밀해 지고 있다.
이 같은 관크의 사례는 연극·뮤지컬 관람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더 늘어나는 추세다. 비싼 돈을 주고 온 공연인 만큼 관람에 방해를 받는다면 짜증이 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하지만 술을 마시고 와서 공연 도중 오바이트를 하거나, 공연 도중 코를 골고 자서 깨웠더니 도리어 욕을 했다는 등 누가 봐도 ‘관크’인 사례 뿐 아니라, 때때로 공연에 집중하고자 타인을 지적하는 태도가, 반대로 다른 이들에게 다소 예민하게 비춰지면서 공연관람을 방해하는 사례들도 점점 등장하고 있다.
◇ “앞으로 모든 공연은 ‘시체관극’을 해야 하는 건가요?”
평소 뮤지컬을 즐겨 보는 A씨는 얼마 전 옆에 있는 관객에게 몸을 과도하게 움직인다는 지적을 들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공연을 보았지만 그 같은 지적을 처음 받았던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움직인 작은 움찔거림까지 지적한 옆 자리 관객으로 인해, 이후 공연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움직임을 단속하느라 더 애를 먹었다고 증언했다. 일절의 움직임도 없이 무대를 바라보는 그날의 옆자리 관객으로 인해 A씨의 머릿속에는 그 날의 공연의 내용은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 유명한 관크였나’라는 자책감에 한동안 뮤지컬을 관람할 수 없었다.
B씨는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얼마 전 연극을 보러 갔다가 단 한순간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명 시체처럼 무대만을 바라보는 관객과 마주하면서 크게 주눅이 든 것이다. 얼마나 목석같았는지 중간 중간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에도 일절 웃음도 없었으며, 잠시 자세를 고쳐 앉으려는 순간 흠칫 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보낸 싸늘한 눈빛은 B씨마저 긴장하고 공연을 보게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시체관극을 체험하고 왔다는 B씨는 앞으로 모든 공연을 이런 식으로 관람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됐다.
◇ “과도한 배우 사랑, 잠시 넣어주면 안 되겠니”
특정 배우에 대한 과도한 사랑이 때로는 공연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아이돌이 등장하는 회차가 되면 현장은 비상사태로 전환된다. 바로 우리 ‘오빠’를 찍기 위해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객들을 막기 위해서다. 같은 그룹 멤버들이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날에는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한 관객은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하필이면 그날 출연 배우 중에 유명 아이돌 멤버가 출연하더라. 인터미션 때 화장실에 가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카메라 셔터음과 함께 플래시가 쏟아져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그날 또 다른 아이돌 멤버가 공연을 관람하러 왔고, 이를 찍기 위해 정보를 접수한 팬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린 거더라”고 푸념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이다. 도대체 어디에 쓸지는 모르겠지만 공연 중 슬쩍 카메라를 꺼내 무대 위 풍경을 찍는 건 기본,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녹음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특수 카메라가 설치된 안경을 쓰고 공연장에 들어와 공연 현장을 녹음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있었다.
한 관객은 “5년 전만 해도 소규모 공연장에 가면 몇몇 정도만 디카로 몇 장 찍고 공연 감상하는 분위기였는데, 최근에는 대놓고 스마트폰으로 공연 영상을 찍더라. 솔직히 굉장히 시선 강탈 된다”고 토로했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팬들의 촬영에 대해 “사전에 철저하게 검사를 하고 제제를 가해도, 공연이 끝난 뒤 온라인상에 해당 공연과 관련된 사진이 꼭 올라온다”며 “아무리 관리를 하더라도 공연장 뒤에 있는 만큼 공연 중 사진촬영을 감시하는 것이 어렵다. 때때로 무대 위 배우들이 촬영을 하는 관객들을 보고 인터미션 때 제보해 줘서 적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고 토로했다.
과도한 사랑은 좌석 티케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C씨는 매진이 빠르다는 뮤지컬이 티켓을 운 좋게 손에 넣어서 공연을 보러 갔다. 그리고 도착한 공연장의 풍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티켓이 매진됐다는 것과는 달리 정작 공연장은 한산했던 것이다. 알고보니 그날 공연을 하는 배우를 좋아하는 팬들이 타인과 한 칸씩 떨어져서 앉기 위해 모두 1인 2좌석씩 예매를 한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돈과 시간을 들여 구매한 만큼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었지만, 이 때문에 그동안 보고 싶은 날 공연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스마트폰은 매너모드로, 기본을 지킵시다”
관크 사례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매너모드를 하지 않아 ‘카톡’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공연장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까지. 공연 직전 모든 공연에서 안내말로 공지하고 또 공지하는 기본적인 예의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관객들은 의외로 많았다.
한 관객은 “하루 종일도 아니고, 공연을 보는 딱 두 시간 정도만 전화기 꺼 놓을 수 없는지, 그게 힘들다면 적어오 매너모드로 돌려놓을 수 있는 거 아니냐. 제발 기본만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 했다.
이밖에도 고개를 하나로 모으는 커플 관객이라든지,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온 관객, 당뇨병이 있어 공연 도중 쿠키를 먹은 60대 노인에게 20대의 관객이 항의를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면서 싸움으로 불붙은 사연 등 관크의 사례는 다양하다. 너무 큰 웃음소리라든지 박수소리 등도 관크로 보는 이들 또한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관크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관크를 당했다고 컴플레인을 거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이해하면 얼굴 붉히지 않고 끝날 일들이었다”며 “지금 공연계에 가장 필요한 건 서로를 향한 배려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