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당초 낙후된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하고 주변을 대규모 주상복합 지구로 통합개발할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이미 일부 구역은 철거까지 시작된 시점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돌연 '노포 보존'을 이유로 계획을 뒤집으면서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서울시 행정이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면서 지역 토지주들과 기존 상인들 간 갈등 구조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23일 "현재 진행 중인 세운상가 재개발사업(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을 도심전통산업과 노포 보존을 위해 전면 재검토하고, 올해 말까지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종합대책에는 기존 재개발 계획 수정안을 포함해 도심제조·유통업 육성방안과 영세 전통 상인 보호 대책 등이 포함된다.
서울시는 먼저 을지로3가역 부근 세운3구역에 위치한 을지면옥, 양미옥 등 노포를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세운3구역 인근에 위치한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 재개발 역시 공구상가 상인 이주 등 종합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사업 추진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면 철거 후 주상복합 등을 지을 계획이었던 세운3구역 재개발 계획은 전면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구역은 서울시로부터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이미 세부계획이 세워져 을지면옥 등 일부 노포만 제외하고 설계를 다시 하긴 어렵다.
세운3구역 시행을 맡은 한호건설 측 관계자는 "서울시 방침상 옛 골목길도 그대로 살려야 하고 고도도 제한돼 있어 몇 가게를 빼고 지으려면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사업이 지연될수록 보상비 등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이라 갑작스러운 발표에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 23일 서울시가 세운 3구역 등이 포함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을 오래된 가게 보존 측면에서 전면 재검토하고 올해 말까지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진은 이번 사태 진원지가 된 세운 3구역 내 을지면옥. [사진제공 = 연합뉴스] |
그러나 정작 생활유산 지정 당시엔 재개발 계획에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가 4년여가 지난 시점에 돌연 사업을 중지시켰다. 이에 따라 생활유산 보존은 박 시장의 '노포 보전' 발언을 실행하기 위한 명분 찾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시장은 앞서 지난 16일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청계천·을지로 일대 재정비로 철거 위기에 놓인 노포들이 되도록 보존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이와 관련해 "그간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도와 시민 인식이 많이 높아지고 사회적 분위기도 달라졌다"며 "이제라도 인식 변화를 정비계획에 반영해 일부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토지주들은 서울시가 을지면옥, 양미옥 등 일부 '기업형 점주'들의 이익을 위해 영세 토지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세운3구역 토지주 홍주화 씨(80)는 "10년 넘게 추진해 온 계획을 시장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뒤엎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세운3구역 토지소유자연합 관계자는 "10여 년이 지나도록 사업 진척이 없어 일부 지주들은 자살한 사례도 있다"며 "사업시행인가 절차까지 마친 재개발사업을 이제 와서 전면 재검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도시계획 전문가 대다수는 서울시가 이미 사업이 진행 중인 재개발 구역을 노포 보전을 위해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것은 행정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보고 있다. 피해를 입은 관련자들에게 서울시가 매몰비용을 보상할 경우 혈세가 투입된다는 점도 문제다.
과거 종로구 옥인동에서 진행된 옥인1구역 재개발사업도 관리처분인가까지 난 사업을 서울시가 이제는 무산된 한양도성 유네스코 지정을 이유로 뒤늦게 백지화한 사례가 있다. 이에 서울시가 해당 주민들에게 매몰비용을 보상하라는 대
[정지성 기자 / 박윤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