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GM과 R&D법인 분리 합의…한국을 연구거점으로 키운다

↑ 이동걸 산은 회장

연구개발(R&D) 법인 분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KDB산업은행과 한국GM 간 갈등이 18일 극적으로 봉합됐다. GM이 R&D 법인 분리 후 비즈니스 플랜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산업은행이 이를 수용하면서 법인 분리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한국GM은 이날 오전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잇달아 열고 만장일치로 R&D 법인 분리 안건을 통과시켰다. 산업은행은 오는 26일로 예정된 한국GM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4000억원의 추가 자금을 집행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은 GM이 제출한 자료와 협상 내용을 검토한 결과 R&D 법인 분리가 한국GM과 한국 자동차 부품업계에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산업은행이 가처분소송도 취하하기로 함에 따라 한국GM R&D 법인 분리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이날 한국GM 측으로부터 받은 약속을 공개했다. 구체적으로 △신설 법인을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및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중점거점으로 지정 △향후 10년뿐 아니라 그 이상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 △추가 R&D 확보를 위한 경쟁력 강화에 노력하겠다는 확약이다.
특히 신설 R&D 법인이 준중형 SUV 및 CUV 중점 연구거점으로 지정되면 생산법인의 경영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이날 진인식 투자관리실장과 함께 산업은행 기자실을 방문해 그동안의 협상 내용과 'R&D 법인 분리 찬성'으로 돌아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 회장은 "기본적으로 2018년 5월에 체결한 기본협약이 법인 분리 이후에도 유효하다는 전제하에 법인 분리가 기본계약을 손상시키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했다"며 "기본협약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고 전문 용역기관 검토 결과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어 "신설된 R&D 법인이 R&D 활성화와 향후 생산법인에도 플러스가 되는 요인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전문 용역법인 검토 결과도 기업 가치가 올라가고 영업이익이 올라가는 등 종합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법인 분리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한국에서 개발한 차량을 한국에서 생산하면 생산법인이 유리해지고, 부품업체도 개발 단계부터 같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GM에 부품을 납품할 수 있는 여력이 훨씬 커진다"고 밝혔다. R&D 법인도 강화되고 생산법인에도 플러스가 된다는 설명이다.
기존에 한국GM이 유리한 조건으로 이용하던 비용분담협정(CSA)을 대체할 계약들도 이번 이사회에서 의결됐다. CSA는 만료된 것으로 하되, 신설 R&D 법인과 GM 본사 기술회사 간에는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이, 한국GM 생산법인과 GM기술회사 간에는 '기술 라이선스 계약'이 체결됐다. 기존에 한국GM이 신차 기술개발에 대한 비용을 공통 부담하는 대신 무상사용권을 받았던 것을 대체할 계약이다. 기술소유권은 GM 본사에 있지만 사용권 측면에서 혜택을 받았던 내용이다.

한국GM은 요율 등 측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GM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도 비용을 공통 분담해야 했지만, 비용 분담 없이 사용료를 좀 더 낮게 내고 쓸 수 있으면 한국GM에도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산업은행 측은 한국GM이 약속한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면 법인 분리를 중단해달라고 법원에 낸 가처분 소송도 취하하기로 했다. 그동안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GM이 한국GM 내에서 R&D 법인을 분리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힌 데 대해 가처분소송을 통해 제동을 걸어왔다. 주주 등 이해관계자에게 타당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배리 엥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올해 상반기 발표한 국내 생산 예정인 두 차종에 더해 2개의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한국에 배정한 것은 한국 사업에 대한 GM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엥글 사장은 "이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중차대한 프로그램들의 성공을 위해 각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하고,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과 수익성을 위해 재무 성과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GM 협력사들도 산업은행과 한국GM 간 합의를 환영했다.
문승 한국GM 협력사 모임 '협심회' 대표는 "산업은행 발표를 환영한다"며 "노조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회사가 이익을 낼 수 있도록 협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GM 노조는 이날 산업은행과 GM 이사회 결정에 대해 '총파업'을 예고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우선 한국GM 노조는 19일 부평과 창원공장에서 전체 조합원 1만1000여 명을 대상으로 총 8시간 파업을 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노조 반발에 대해 "기존의 계약에 대비해 손해 보는 부분, 피해 보는 부분은 없는 반면 잠재적으로 이익이 될 부분이 많이 있다"며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문지웅 기자 / 이승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