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은행들이 해외 사업에서 거둬들인 성적표다. 법인과 지점 등 해외 네트워크를 가장 많이 늘린 곳은 우리은행, 해외에서 수익성을 높인 곳은 신한은행으로 집계된 것이다. 내년에도 은행들이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 등에 발맞춰 해외 먹거리 발굴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돼 글로벌 영토 싸움은 지속될 것으로 분석된다.
9일 매일경제가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글로벌 실적을 분석한 결과 올해 새로 문을 연 해외 네트워크 숫자가 가장 많은 곳은 우리은행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이 새롭게 추가한 해외 영업 채널은 총 121곳에 달한다. 현재 우리은행 해외 네트워크는 총 422곳으로 2위인 신한(163곳)과 격차를 2배 이상 벌렸다.
우리은행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지난 6월 인수한 캄보디아 현지 금융사 '비전펀드 캄보디아'다. 2003년 설립된 비전펀드 캄보디아는 총자산 2200억원에 현지 지점 106곳을 보유한 여·수신 전문 금융사다. 우리은행은 2014년 현지 여신 전문 회사인 우리파이낸스캄보디아를 사들여 캄보디아에 첫발을 디딘 후 4년 만에 추가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향후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이 마무리되면 칭다오 등 중국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지점을 늘릴 계획이다. 동남아 국가에서도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지난해 취임 당시 손태승 행장이 밝힌 '우리은행 글로벌 네트워크 500개'라는 목표가 조만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우리은행은 2015년에도 국내 은행 중 최초로 해외 네트워크를 200개까지 확대했다.
우리은행에 이어 글로벌 거점을 많이 늘린 곳은 하나은행이다. 올해 미얀마 법인 소속 현지 지점 14곳을 추가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미얀마 4곳, 캄보디아 2곳 등 지점 총 6곳을 신설했다. 신한은행도 멕시코 법인과 베트남·캄보디아 지점 오픈을 통해 해외 네트워크 6곳을 추가했다.
해외에서 번 돈이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 은행으로는 신한은행이 꼽혔다. 올해 1~9월 글로벌 시장에서 거둔 당기순이익은 244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4%나 불어났다. 은행 전체 수익에서 해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11.6%에서 올해 12.8%로 1.2%포인트 증가했다.
실적 증가의 첨병은 신한베트남은행이다. 이곳은 90만명이 넘는 현지 고객을 확보해 HSBC은행을 제치고 베트남에서 사업 중인 외국계 은행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호주계 안즈은행의 소매금융 사업 부문을 인수한 데 힘입어 올해 베트남 현지인 대상 신용대출 사업을 확대했다.
현지 1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잘로(Zalo), 가입자 500만명 이상을 확보한 전자금융 플랫폼 모모(MOMO)와 손잡고 전용대출을 선보이는 등 현지에서 비대면 금융 서비스를 잇따라 도입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출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베트남 쏠(SOL)'은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만 알면 송금할 수 있는 연락처 이체 기능 등을 탑재해 출시 한 달 만에 11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모을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해외 순익 부문에서는 하나은행이 올해 2975억원을 거둬 지난해에 이어 은행 선두 자리를 지켰다. 시중은행 가운데 글로벌 사업 규모가 가장 작은 국민은행은 올해 1~3분기 순익이 작년 대비 3배 이상 뛰는 '깜짝' 실적을 올렸다.
올해 은행들의 글로벌 사업은 전반적으로 성장세를 이어왔지만 특정 지역에만 편중돼 있는 점은 향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주요 은행이 올해 새롭게 지점을 낸 곳 대부분이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에 몰려 있다. 실적도 신한은행은 신한베트남은행 1곳에서 나오는 순익 비중이 전체 글로벌 순익 중 31%나 된다.
최근 국내 은행이 동남아에서 펼치는 사업이 마이크로파이낸싱 같은 중금리 대출 위주라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국내에서 비판받아 온 이자수익 중심의 수익 구조를 해외에서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올해 신한은행이 국내 은행 중 처음으로 멕시코에 법인을 내고 하나은행도 법인 설립을 준비하는 등 중남미를 중심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그룹 차원에서 해외 투자은행(IB) 거점을 하나로 모으고 글로벌 IB사업 확대에 나선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