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대란 (上) ◆
이번 조사에는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유가증권시장 상장 256개 기업(6월 말 기준) 중 10대 그룹 계열사를 비롯한 64개 기업이 참여했다. 설문 결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 우려하는 기업들 정서가 그대로 확인됐다. 주주권 행사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형 연기금의 비전문적 경영 개입이 기업 경영 환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염려다.
특히 국민연금이 투자한 상장사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개별 기업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을 때 회사 주총 안건에 대해 정부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81.2%(52개사)로 응답 상장사 중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모르겠다' 혹은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내다본 상장사는 각각 6개에 불과했다.
실제 반대 의사를 표출한 상장사 중 56.2%는 국민연금의 지나친 경영 간섭으로 인해 기업과 주주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설문에 응한 A사 관계자는 "민간 경영에 대한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며 "(스튜어드 코드 도입에 앞서)의결권과 주주권 행사에 대한 명확한 지침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B사 관계자 역시 "여론이나 특정 이해관계자 의견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사업과 해당 회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국내 상장사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배당 확대 요구가 아니라 사외이사·감사 선임 반대(45%)와 의결권 자문기구의 비전문적 경영 개입(43%)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배당 확대 등 단기적인 수익률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기업 인사와 사업 전략 등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를 통해 이사와 감사 선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기업(569개) 10곳 중 6곳(63.4%)에서 반대표를 행사했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특히 이 중 가장 많은 반대 안건은 이사·감사 선임 안건과 이들 보수 한도액 승인 안건 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인사 부문에 정부 입김이 행사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선행돼야 할 법적·제도적 장치로 '지나친 경영 간섭을 방지할 금지 조항 마련이 필요하다'(42.1%)고 응답했다. 이 밖에 '정부 입김으로부터 국민연금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응답도 37.5%에 달했다. 기업들을 설문에 직접 주관식으로 응답해 "의결권 자문기구의 비전문적 경영 개입에 대한 제제와 대응 정책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거나 "전문 인력 확보와 각 기업에 대한 이해도 제고가 필요하다"는 강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설문에 응한 제조업체 재경팀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강제할 위험에 대한 리스크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파악한 후에 도입해야 하고, 과도한 경영 간섭에 대한 금지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장문의 답변을 보내온 사례도 있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본연의 의무는 국민 자산을 안정적으로 증식하는 것인 만큼 연금 재원이 고갈되지 않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둬야 한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기업 M&A 같은 문제에 적극 개입하다 보면 과거처럼 수장들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으므로 항상 중립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역임한 전광우 전 이사장도 "국민연금이 ESG 투자를 늘리는 등 투자 행위는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관점에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이지 경영권 개입 논란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설문 참여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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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경 기자 / 유준호 기자 / 정우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