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C는 복지다 ③ ◆
올해 들어 정부는 건설업 일자리 개선 대책을 줄줄이 발표했다. 문제는 내놓은 정책들이 임금 체불 방지, 공공공사 발주자 대금 지급 관리, 적정 임금제 등 임금 지급 구조·하도급 등 '다운스트림'에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공사 기획 단계마다 공사비가 구조적으로 깎이는 '공사비 후려치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한참 미흡하다는 게 건설업계와 건설현장 근로자들 불만이다. 문제 핵심은 정부 공사의 가격 그 자체인데, 이를 개선하지 않고 곁가지만 건드린다는 지적이다.
한국건설관리학회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작성한 '공공공사비 산정 및 관리 실태와 제도적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사회간접자본(SOC) 공사에서 최초 공사비 산정액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검토 단계를 거쳐 발주 기관의 최종 검토 단계까지 오는 동안 평균 13.47% 깎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의 예비타당성 검토 단계 시 산정한 공사비를 100으로 가정하면 조달청 총사업비 검토(92.56), 발주 기관 자체 조정(89.29), 주무 부처 자체 검토(88.56), 기재부 예산 검토(88.4), 발주 기관 최종 검토(86.53) 등 단계를 밟을 때마다 많게는 7%포인트씩 삭감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낙찰률까지 적용하면 실제 건설사들이 손에 쥐는 공사비는 더욱 줄어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재인정부 들어 SOC 예산을 대거 삭감하면서 일감 자체가 줄자 300억원 미만 소규모 SOC 공사 입찰에도 중견 건설사 수십 개가 참가해 가격경쟁을 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다.
충청도에 기반을 둔 한 중견 건설사 대표 A씨는 "과거엔 정부 일감을 따내면 그날은 내부 직원들과 하도급 업체들이 함께 회식을 하면서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였다"며 "이제는 일감을 따고도 솔직히 어떻게 하도급 가격을 후려쳐야 내가 밑지지 않을지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불거지는 하도급 환경 문제도 결국 발주자인 정부가 적정 공사비를 주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많다.
대한건설협회가 최근 3년간 준공된 공공공사 129건을 조사한 결과 37.2%인 48건에서 발주금액이 현지 투입 공사비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본사 일반관리비와 당해 공사 최소 이윤까지 포함하면 적자 공사는 67%까지 높아진다고 건설협회 측은 설명한다.
공공공사로만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전국 3121개 건설사의 2016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24.6%로 집계됐다. 10곳 중 3곳이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 공사에 집중하던 중소형 건설사들이 퇴출되면서 최근 12년간(2005~2017년) 토목업체 중 60.9%가 문을 닫았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최근 10년간 토목건축공사업체 일자리 8899개, 토목공사업체 일자리 6618개 등 총 4만5000여 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공사현장 안전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근로자 1000명당 발생하는 재해자 수 비율인 천인율은 2006년에는 건설업이 7.05%로 전 산업 평균(7.69%)보다 양호했다. 하지만 2015년에는 건설업 천인율이 7.48%인 반면 전 산업 평균은 5.02%로 낮아져 건설 부문 안전성이 크게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어진 공공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공공공사 수행 건설사가 부실 공사 수행으로 받은 벌점이 2015년 하반기 53.31점에서 2017년 상반기 103.87점으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정부도 이런 '공사비 제값 받기' 요구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 국토부는 다음달 이후 적정 임금제 시범사업 발주를 검토하는데 적정 임금제 도입에 따른 SOC 공사비 증가분 반영을 검토 중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이 발주하는 사업이 대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건비가 올라가면 당연히 공사비 책정도 고려 대상이 된다"
[이지용 기자 / 전범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