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 주권' 논란 ◆
우선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찬성하는 쪽은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를 근거로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은 수년간 '투명성 제고를 위해' 한국 정부에 개입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해 왔다.
선진국 가운데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월 단위 개입 규모를 한 달 뒤에 공개하고 있다. 미국은 분기별로 자료를 모아 분기가 끝나고 한 달 뒤에, 유럽중앙은행(ECB)은 일별로 당일 장 마감 후에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세계 3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시장 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미국, ECB, 일본은 2010년대 들어 외환시장에 개입한 적이 없다. 반면 기축통화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외환시장 개입이 빈번한 스위스는 연 단위로 해마다 2월에 자료를 공개한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0위권 안에 들어가는 국가 가운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밝히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인도네시아 정도밖에 없다.
각국이 중앙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내역은 월·분기·연도 등 공개 주기 동안 외환 현물과 선물시장에 외화를 총 몇억 달러 순매수·순매도했는지다. 특정 시점에 얼마를 사고팔았는지 등 구체적 수치는 없다. 미국 정부는 교역촉진법에 따라 2016년부터 의회에 제출해온 환율보고서에서 줄곧 한국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 공개를 요구해왔다. 최근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첨예해지는 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보듯 미국 압박이 거세기 때문에 한국이 환율 문제에 있어서도 극도로 조심할 수밖에 없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해마다 두 번 환율보고서를 발표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크게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고, 공개를 안 하는 건 미국과 싸우자는 것이어서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도 지난달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면서 "최근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을 극도로 자제했다. 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의혹을 떨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투기세력이 이를 악용할 우려에 대해서도 "적어도 1개월 이상 시차를 두고 발표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다"고 못 박았다.
2016년 기준 수출액을 GDP로 나눈 '수출의존도'를 보면 중국(19.1%) 일본(13.1%) 인도(11.7%)에 비해 한국(35.1%)이 훨씬 높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곳 중 우리나라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곳은 없다"며 "다른 국가들처럼 한 달 이후에 공개하는 방식이라 해도 우리가 환율시장에 대처하는 패턴이 분석될 위험이 있고, 이로 인해 환율 조정이 정말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외환당국이 적절한 대처를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 주권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압박에 못 이겨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성급히 공개하는 모양새"라며 "공개를 해야 한다면 국내 논의를 거쳐 우리나라가 결정해야 할 일인데 지금은 국가 주권을 침해당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이번 결정으로 향후 한국의 외환보유액 유지 활동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 보유액을 유지하기 위해 달러를 사고, 이런 활동이 결국 원화값 하락으로 이어지는데 미국 측에서 나중에 환율조작으로 문제 삼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염려했다.
외환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방침을 사실상 결정한 만큼 앞으로 미국·IMF와 협상에서 공개 주기를 최대한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외
[조시영 기자 / 문재용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