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만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재임 2년여 동안 후회 없는 여정이었다면서 차기 정부의 정책 과제로 이같이 말했다. 사실상 최근 은행업권과 증권업권 간 업무영역을 놓고 벌어졌던 갈등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셈이다. 실제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각 업권을 대표해 업무 영역, 소위 '운동장' 침범을 두고 설전을 벌여왔다.
임 위원장은 "은행업계에서 원하는 투자일임업과 불특정금전신탁, 금융투자업계에서 원하는 법인지급결제계좌, 외국환업무를 두고 서로 교환하는 일종의 '빅딜'을 시도했다"며 "하지만 업계 스스로 서로 자기 손해가 크다는 식으로 주저했다"고 말했다.
은행과 증권업권 양쪽 모두 규제 완화를 주장하면서도 결국 현행 전업주의에 의존해 각자 업무 영역을 고수하는 데 급급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금융소비자의 편익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임 위원장은 "장기적으로 가계와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려면 은행·증권업권 간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들은 업권과 관계없이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신탁 상품 활성화를 위해 신탁업법 별도 제정을 논의했지만 2004년부터 금지된 불특정금전신탁 판매는 허용하지 않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은행의 공세로 공모펀드와 투자일임업의 파이가 줄어들 수 있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또 금융위는 증권업계에 초대형 투자은행(IB)을 인가해 기업금융과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했지만 은행의 반발로 외국환업무와 법인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하지 않았다. 임 위원장은 "남은 임기가 주어진다면 은행과 증권사 간 겸업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2009년 시행된 통합 자본시장법이 현재 급변하는 자본시장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임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엄격한 전업주의를 토대로 한 현행 통합 자본시장법의 틀 안에서는 금융 현장의 애로 사항을 즉각 해결하기 어렵다"며 "신탁업, 사모펀드, 개인연금 등 개별 법을 별도 제정해 금융소비자의 수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지배구조도 결국 자본시장의 흐름을 따르는 쪽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 위원장은 "앞으로 국내 기업이 외국인, 기관투자가 같은 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오너 개인보다는 시장이 주도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것이 기업에도 바람직하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도 결국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요구에 따라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서 오히려 주가가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임 위원장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사모펀드(PEF)의 역할이 더욱 커져야 한다"며 "그래야 생존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단명하지 않고 중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3월 취임 당시 금융산업을 자본시장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정책 과제도 자본시장에 집중됐다. 거래소 지주사 전환, 초대형 IB 도입,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회계제도 개편 등이 대표적인 개혁 과제였다.
일부는 시행돼 시장 검증을 받고 있고, 또 일부는 아직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갈 길이 멀다. 임 위원장 본인은 취임 당시 품고 있던 생각들을 시장에 모두 쏟아냈기 때문에 "여한이 없다"고 했다. 마침 코스피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금융시장이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임 위원장은 임기 중 관치 인사를 척결한 것을 과업 중 하나로 자평했다. 그는 "
[배미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