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이모씨는 양도소득세를 피하려고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 가운데 일부를 다른 사람 명의로 신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씨는 2011년 9월 자기 소유의 주택 1채를 김모씨에게 명의신탁하고 소유권을 이전했다.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1심에서 벌금 6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자신 명의의 부동산을 남의 이름으로 등기하지 못하도록 한 부동산 실명제법이 시행된 지 내달 1일로 20년째를 맞지만, 아직도 이씨처럼 실정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지는 사람이 연간 수백 명에 달한다.
3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부동산 실명제법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은 2005년 928명에서 지난해는 578명으로 집계됐다.
2006년 830명이었던 기소자는 2007년 630명, 2008년 537명, 2009년 493명, 2010년 499명으로 감소세를 보였다가 2011년은 다시 628명으로 늘었다. 2012년에는 550명, 2013년 57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구속자 수는 2005년 50명에서 지난해 2명으로 크게 줄었지만, 불구속 기소되는 사람은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전히 연간 100여명 안팎을 기록했다.
벌금형으로 재판에 넘겨지는 약식기소도 2005년 740명에서 지난해 440명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2007년 이후 꾸준히 500명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실명제법위반으로 적발되면 형사재판에 넘겨지는 것은 물론 원칙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부과하는 과징금 처분도 받는다.
서울시만 따져보면 실명제법이 시행된 이후 올해 1분기까지 총 1천519건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과징금 액수는 1천565억원에 달했는데 현재까지 미납된 금액이 585건 696억원에 달했다.
실명제법은 탈세나 재산은닉, 투기목적으로 악용되는 명의신탁을 금지하기 위해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도입됐다.
1990년 부동산 등기에 대한 특례법으로 탈세나 시세차익을 노린 명의신탁을 처벌하는 조항이 마련됐지만 실질적인 단속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1993년 금융실명제법 도입으로 부동산에 자금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투기를 막기 위한 부동산 실명제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 터였다.
그러나 시행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연간 수백명이 자신 명의의 부동산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했다가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받고 형사재판에도 넘겨지고 있다..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은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도 단골 이슈다.
올 2월 이완구 전 총리의 청문회에서는 분당 땅을 차명으로 소유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안창호 헌법재판관도 2012년 청문회 당시 부동산 차명거래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2009년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청문회에서 명의신탁 등 재산관련 의혹으로 도마 위에 올랐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차명부동산 논란으로 아들과 처남, 조카 등이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실무적으로 봤을 때 명의신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기소되는 사람이 많이 줄기는 했다"면서도 "그럼에도 명의신탁으로 적발되는 사람은 여전히 있고,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이뤄지는 명의신탁도 많은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명의신탁 범죄는 뇌물범죄처럼
한 법조계 관계자도 "실명제법 시행으로 자칫하면 소유권을 뺏길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명의신탁을 주저할 때도 있지만 암암리에 여전히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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