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富者)’. 이 말을 듣기 위해선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어야 할까.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만석(萬石)꾼’이라는 말이 있었다. 중국 사마천의 저서 ‘사기(史記)’에 나오는 석분이란 사람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로 곡식 1만섬을 수확할 수 있는 논밭을 가진 이를 뜻한다. 여기로부터 만석꾼 보다 논밭 규모가 적은 ‘천석꾼’이라는 말이 파생되기도 했다.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말이 등장했다. 개인 자산이 화폐단위 기준 100만 이상인 사람을 지칭한다. 1719년 프랑스인 스티븐 펜티먼에 의해 처음 사용됐고, 1816년 영국 낭만파 시인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편지에서도 이 단어를 볼 수 있다.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정치소설 ‘비비언 그레이’에서 같은 말을 사용했고, 미국 정치철학자인 토머스 제퍼슨은 “가장 가난한 노동자가 가장 돈 많은 부자(Wealthiest millionary)와 나란히 섰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화폐가치 변화와 함께 백만장자의 조건은 바뀌었다. 소비자 물가지수를 감안하면 1900년도의 100만 달러는 오늘날 2500만 달러 이상의 구매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부자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건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와 컨설팅사 캡제미니가 매년 발간하는 ‘세계 부 리포트(World Wealth Report)’다. 이 리포트는 부자의 기준을 ‘1차 주거용 부동산 외 모든 자산의 순가치가 100만 달러 이상인 개인’으로 정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작년 기준 백만장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는 미국(690만명)이며 중국(361만명), 일본(112만명), 영국(73만명), 스위스(46만명)가 뒤를 잇는다.
그럼 대한민국에서 부자 대우를 받고 살려면 얼마가 있어야 할까.
KB금융경영연구소는 국내 최대 금융거래 소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의 부자를 심층 분석한 보고서를 2011년부터 매년 내놓고 있다. 이 보고서는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개인을 부자로 분류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8만5000명이었던 한국의 부자수는 2009년 처음 10만명을 돌파했고 2014년 말 기준 18만2000명에 달하고 있다. 한국 부자 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8년 일시적으로 감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 부자의 전체 금융자산은 2007년 182조원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406조원에 달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1인당 평균 22억3000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체 국민의 상위 0.35%가 가계 총 금융자산의 14.3%를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자는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 부자는 대부분 서울에 살까. 부자 아빠의 자녀도 계속 부자일까. 부자는 최근 몇년 간 어디에 투자해서 돈을 벌었을까. 이들의 최대 자산관리 관심사는 무엇일까.
매일경제신문은 이같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KB금융경영연구소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의 부자를 분석했다. 한국 부자의 총자산 구조, 금융 및 부동산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 은퇴 및 노후 준비, 상속 및 증여, 투자 성향 등을 들여다봤다.
분석 결과 한국 부자들은 지난 5년간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짙어지면서 안정형 투자나 공격형 투자 대신 중위험·중수익 투자성향으로 변모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롭게 한국 부자 대열에 합류한 40·50대를 중심으로 자산구조에서 부동산 비중이 감소했고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2011
[이유섭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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