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10월 21일(06:06)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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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을 많이 가진 기업일수록 설비확장이나 인수·합병(M&A) 등 성장을 위한 투자에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글로벌 회계업체인 딜로이트가 최근 발간한 '캐쉬 패러독스(The Cash Paradox)' 보고서에 따르면 사내 유보현금이 많은 기업의 지난해 자본적 지출(Capital Expenditure) 규모는 1조140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의 37%에 불과한 수준이다.
반면 유보현금이 적은 기업은 지난해 영업활동으로 창출된 현금의 63%를 재투자에 사용해 지난해 자본적 지출 규모가 633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딜로이트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1200 인덱스에 등록된 966개 비금융 기업을 조사해 기업간 보유현금 차이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분기점이 25억달러인 점에 착안해 지난해 말 기준 25억달러(약 2조6500억원) 이상 현금 보유기업을 '현금보유량이 많은 기업(large cash holding companies)', 25억달러 미만 보유기업을 '현금보유량이 적은 기업(small cash holding companies)'으로 분류해 이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25억달러 이상 현금을 보유한 기업은 966개 중 311개(32%), 25억달러 미만 보유 기업은 655개(68%)에 달했다. 또 지난해 말 기준 이들 966개 기업의 보유현금은 총 3조5300억달러였다. 국가별로는 966개 기업 중 미국 기업들의 현금보유량이 1조6000달러(45%)로 1위였다. 이어 일본(14%),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이 뒤를 이었다.
현금유보가 많은 기업은 적은 기업에 비해 M&A에도 소극적이었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현금이 많은 기업은 총 1조200억달러를 M&A 거래에 투자했지만 보유현금 규모와 비교했을 때 그 비중은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M&A 투자 규모는 보유현금의 13%에 그쳤다. 이는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현금유보가 많은 기업이 유보현금의 60%를 M&A에 사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반면 현금유보가 적은 기업은 2009년 이후 M&A 활동에 총 6030억달러를 사용했지만 보유현금 규모와 비교했을 때 그 비중은 금융위기 수준으로 서서히 회복 중이다. 지난해 M&A 투자 규모는 유보현금의 78%에 달했다.
현금보유량이 적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M&A 활동은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2000년 이후 주가가 632% 올랐다. 반면 현금보유량이 많은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M&A에 부진한 탓에 같은 기간 주가가 327% 상승하는데 그쳤다.
딜로이트는 기업간 현금유보와 투자 양상이 달라지는 이유를 리더의 임기에서 찾았다. 유보현금이 많은 기업은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평균 45개월인 반면, 유보현금이 적은 기업의 CEO 임기는 평균 77개월이었다. 딜로이트는 현금보유량이 적은 기업의 CEO는 임기가 상대적으로 길어 회사의 성장기를 경험할 수 있었고 금융위기에도 굳건한 대처가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장영순 딜로이트 재무자문본부 대표는 "현금유보량이 많으면 우량회사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나 이번 조사 결과, 현금을 많이 가졌다고 기업 성장률이 높아지는 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기업 유보현금에 과세하려는 정부 정책 때문에 억지로 투자규모를 늘릴 게 아니라, 이런 실증적인 자료가 뒷받침하듯 기업은 유보자금을 신사업 개척 등에 활용하는 선제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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