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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김형오 MBN 앵커
출연: 김금혁 / 전 국가보훈부 보좌관 (2012년 탈북)
김가영 / 탈북민 (장마당 세대, 2013년 탈북)
[전문]
○ 앵 커> 이번에 파리 올림픽 소식도 북한 주민들이 좀 아나요? 하도 남북한 선수들이 마주치는 것도 너무 통제·감시가 심하니까. 원래는 이제 그런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는 남북한 선수들이 만나면 서로 뭐 사진도 같이 찍고 말도 조금 섞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아예 이번에 눈 마주치고 조금 웃었다고 해가지고 북한에 돌아가가지고 처벌 받았다는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주민들은 전혀 그런 파리올림픽이나 이런 소식들을?
● 김가영> 전혀 접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 국가에서 그냥 보여주는 것만 주민들은 볼 수가 있고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불법적으로 정말 목숨을 걸고 이렇게 돌아오는 거는 들을 수가 있지만,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는 국가에서 허용한 거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처럼 정말 디테일하게 누구랑 누가 사진 찍었다. 이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그런 정보력은 아직 북한이 희미합니다.
○ 앵 커> 그렇지만 이제 말씀하신 대로 이제 곳곳에 나가있는 해외 주재원 등을 통해서 혹은 중국을 경유해가지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 새로운 얘기들이 가고 장마당 세대는 이제 그냥 북한 김정은 체제를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거다. 이런 생각도 좀 드는 군요.
● 김금혁> 네.
○ 앵 커> 알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래서 꼭 국가에 충성을, 국가에 충성하지 말라고 말하기 좀 이상하네요. 국가에 충성을 해야죠. 대한민국이라하는 국가에는 충성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는 건 또 아니거든요. 이제 우리는 언론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뭐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충성을 하고 국가에 대한 어떤 존중을 하지만 정부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할 수 있는 그런 자유 언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니까. 제가 이 얘기를 왜 꺼내냐면 이제 대한민국에 이제 도착을 했고 꿈과 희망을 갖고 내가 이제 한번 목숨을 내걸고 올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처음 딱 느꼈지만 사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나라. 뭐 우리 뿐만 아니에요. 자본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미국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요.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대학을 나온 사람도 힘에 버거워서 그렇죠? 소위 말하는 실패를 많이 경험하는 그런 아주 경쟁이 너무너무 치열한 그런 사회 시스템이거든요? 시장주의 시스템이라는 게. 북한에서 금수저로 두 분 다 태어나서 이렇게 먹고 이런 건 걱정이 없었는데 딱 도착하는 순간, 과연 내가 여기에서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그러면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런 고민들, 걱정들이 되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김가영> 그렇죠.
○ 앵 커> 우리 김가영 선생님은
● 김가영> 저는 일단 꿈만 한보따리였었죠.
○ 앵 커> 그 꿈들이 이제 다 부서질 수도 있어요.
● 김가영> 솔직히 초반에 시작 딱 했을 때 제 통장에는 돈이 40만 원이 전부였거든요.
○ 앵 커> 원래 좀 이렇게 국가 넘어왔을 때 처음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이 좀 있잖아요?
● 김가영> 네. 있죠. 1,300 얼마죠? 우리 데이터 잘 아실 것 같은데?
● 김금혁> 원래 600만 원을 일시로 지급하고요. 300만 원은 바로 통장에 넣어주고 그리고 100만 원은 분기에 한 번씩 넣어주고요.
● 김가영> 총 지원금이 일단 1,300 얼마라는 건 제가 알거든요.
● 김금혁> 그 중의 얼마는 이제 주택으로 들어가니까.
● 김가영> 근데 저희가 딱 나오는 순간, 살 곳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임대아파트를 제공해줍니다. 그러면 임대아파트 보증금으로 그 일부가 들어가죠. 그러니까, 600만 원 정도가 남는데 이거를 분할로 지급하고 일시금으로는 300만 원을
○ 앵 커> 그럼 한달치나 두 달 치정도의 생활비 정도는 아주 기본생활비. 먹을 수 있는 그런 정도만.
● 김가영> 근데 그 300만 원 주는데 제가 브로커 비용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 앵 커> 아, 갚아야 되는구나.
● 김가영> 다 쓸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200만 원만 주고 100만 원을 남겼는데 이것, 저것 사다 보니까 40만 원이 남는 겁니다.
○ 앵 커> 그렇겠죠. 뭐 밥솥도 사야 되고 휴대전화도 하나 당연히 있어야 되고.
● 김가영> 예. 휴대전화는 뭐 할부 되니까요. 근데 제가 집에 딱 갔는데 가스레인지 하나, 밥솥 하나, 그다음에 이불 패드 하나랑 이불 하나가 전부였거든요.
○ 앵 커> 아, 기본적으로 그거는 줬구나.
● 김가영> 네. 그거는 정부에서 제공해주시거든요? 그걸 딱 받은 순간에 통장을 봤는데 40만 원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그 40만 원 가치도 솔직히 잘 몰라요. 이 40만 원의 가치가.
○ 앵 커> 그치. 뭘 할 수 있는지를 모르니까.
● 김가영> 예. 뭘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는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 전에는 이렇게 어떤 큰 파라솔 안에서 살았다면 지금은 뭔가 덩그러니 혼자 이렇게 앉아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허무함도 들기도 했지만, 저는 근데 희망이 있었던 게요. 드라마를 보면서 저희가 탈북할 때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부자처럼 살겠다고 온 게 아니라요. 그 드라마에서 서민이라고 나오는 사람들의 삶을 봤을 때 그 사람의 삶이 옥탑방에서 살고 있는데 집안에는 다 있을 게 다 있어요.
○ 앵 커> 텔레비전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 김가영> 그리고 먹는 걸 봤더니 흰밥에 김치만 먹는 게 아니고 흰밥에 고기도 먹고 계란도 먹는 거에요. 아 우리가 저기서 말하는 서민으로 살아도 저 정도는 살겠구나. 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거에 대해서 그렇게 막 크게 위기같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 앵 커> 에이. 아닐 것 같은데? 딱 제가 한국 드라마에 왜 이제 고급 아파트에 이제 사모님들 사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텐데.
● 김가영> 그럼요. 여잔데요. 저도 뭐 이렇게 차에서 내리고 싶고 이런 게 있었죠. 그리고 저의 꿈은 배우 김수현님 같은 남자도 만나보고 싶었고
○ 앵 커> 김수현. (웃음)
● 김가영> 이런 것도 있었지만, 그랬지만 저희는 항상 우리는 바닥으로 생각하고 시작하자. 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또 특히, 저는 이모, 언니 같이 왔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항상 동기부여가 돼가지고 우리가 그것만 생각하면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제 그때 나이가 스물 세 살 이다 보니까, 딱 나가면 커피 한잔을 주문 못하겠는 거에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만큼 제가 모르는 거에요. 이 사회에 대해서. 커피 한잔도 주문을 못 하는 내가 어떻게 개척해나가며 어떻게 살지? 라는 두려움과 그거에 대한 솔직히 뭐라고 해야 되지. 공포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자괴감도 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항상 저는요. 대한민국에 와서 지금 10년 됐지만, 단 한번도 1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고 말 하고요. 다시 태어나도 저는 대한민국에 오는 길 선택하겠다. 싶은 이유가 대한민국은 노력하면 살 수가 있잖아요.
○ 앵 커> 기회가 주어진다?
● 김가영> 그럼요. 그리고 또 하나. 저는 탈북민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북한에서 살았고 탈북하는 과정은 수 없이 좌절하고 수 없이 무너지고 수 없는, 수 많은 걸 해봤기 때문에 한국에서 겪는 그런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었던 거에요. 그래서 저희는 탈북민은 자랑스럽고 또 하나는 탈북민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저희한테 해주는 기본적인 해주는 그런 바탕을 깔아주었던 게 저는 조금 힘이 됐다. 그래서 그게 저는 동기부여가 되어서 내가 받은 거에 몇 배는 못 갚아도 받은 것 만큼은 갚는 사람이 되자고 시작했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 저는 항상 강의할 때 얘기합니다. 너무 어렵다. 미래가 안 보인다. 한국에. 막 이렇게 얘기하시거든요? 왜 안보이냐고. 미래가. 뭐 했냐고. 미래를 위해서 뭐 한 게 있냐고. 저는 정말로 40만 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제가 많은 것까지는 이루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앉아있을 자리, 보금자리는 마련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말 노력하면 기회가 조성되는 나라가 얼마나 좋냐. 그럼 우리가 좀 더 노력해보자.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솔직히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거는 충분히 갚아나갈 수 있는 어려움이기 때문에 저는 한번도 생각 못 해봤습니다.
○ 앵 커> 그러니까, 이제 너무 힘든 환경에서 역경을 뚫고 이제 정착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제 여기서 맞닥뜨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은 어려움 축에는 못 끼는 거잖아요?
● 김가영> 그럼요.
○ 앵 커>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 김가영> 네. 충분히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솔직히 탈북민 사회들 이런 뭐 정착 그다음에 지원 이런 게 반드시 필요하지만요. 저는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가 나의 컨트롤 할 필요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앵 커> 우리 보좌관님은 어때요? 이 엘리트, 금수저로 살다가 이제 대한민국에 딱 도착을 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그만큼 북한에서 내가 대접받는 만큼 남한 사람들도 나를 대접해주길 원했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는 안 됐을 거 아니에요.
● 김금혁> 네. 전혀 그런 건 없었죠.
○ 앵 커> 그러니까, 뭐 일종의 특혜 이런 건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쵸?
● 김금혁> 아주 이만큼의 특혜도 없었고요. 저도 처음에 마찬가지로 김가영 씨 말씀하신처럼 흔히 그런 말이 있습니다. 북한에 삼자 막대기를 휘둘러도 거리낄 것이 없다. 집에 아무것도 없다는 거에요. 가전제품도 없고 그러니까 삼자 막대기가 얼마나 깁니까? 그걸 이렇게 휘둘러도 걸릴 게 없다는 거죠. 집에. 그만큼, 가스레인지 하나, 전기밥솥 하나 그리고 하나원 나올 때 준 이불 하나.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사실, 벽에 기대 앉아가지고 지금도 생각나는 게 이제 어떻게 뭘 해서 먹고 살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었는데요. 근데 그 다음날 돼서 생각했던 건 일단 휴대폰이라도 개통을 해야겠다. 일단은 뭐라도 해야지. 라는 생각이 있었고,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적응을 해나갔던 것 같고 그리고 북한에 있을 때는 사실, 뭐 남들이 쓰린 버린 제품 이런 건 쓸 생각은 전혀 안 했지만,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곳이 재활용품 센터밖에 없더라고요. 재활용품 센터에 가서 남들이 한 10년 쓰다 버린 세탁기 사고. 근데 그 사는 과정이 부끄럽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야 10년 됐는데 괜찮은데? 저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10년 썼는데 이렇게 깨끗하다고? 그리고 누가 리퍼 제품 열었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반품한 제품. 근데 흠집이 이만큼 있더라고요. 이걸 가지고 뭘 반품을 하나. 감사합니다. 반품해 주신 분. 이러면서 긍정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니까 느낀, 그렇게 한 1년 정도 그리고 저는 정말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고요. 뭐 제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데 택배 상하차하는 아르바이트계 해병대라고 하죠. 택배 상하차부터 해서 또 드라마 단역출연 같은 거 했었습니다. 보조 출연 알바. 그게 한 13만 원 주거든요? 그리고 이제 생동성 실험 알바라고 해서 임상실험 알바가 있습니다. 그건 사실, 알바계의 UDT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그런 것도 하고 하면서 사실 굉장히 어떻게 보면 살아남기 위해서 애를 썼는데 한 1년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그때 막 유행하던 단어가 헬조선. 너무 힘들다. 라는 단어였는데
○ 앵 커> 많이 유행했었죠.
● 김금혁> 그 단어보면서 야, 내가 진짜 헬에서 왔는데 당신들은 헬이 뭔지 모른다. 지금 너무나 물론, 헬조선이라고 부르시는 분들의 고충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또 그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극단적인 단어를 쓰면서까지도 어려움을 표출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이해하나,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우리는 정말 헬에서 왔고 그 헬과 비교했을 때 여기는 사실 천국인데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저도 결국은 살아남아서 뭔가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조금 더 해봤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뭔가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던가 이런 것이 잘 주어지고 그리고 노력을 한다고 해서 다 보상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보상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조금 인내하는 마음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학교도 그때 다시 들어갔고요. 저는 들어오자마자 수능을 준비해서 1년 만에 고려대학교를 들어갔는데 가니까 또 거기도 천국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약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거죠. 뭐 스카이는 한국에서 내놔라 하는 인재들이 모이는 곳인데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각은 너는 김일성 대니까 공부 잘 할 거 아니야. 라는 인식이 일단 기본적으로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내가 저들과 경쟁에서 내가 밀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으로 걱정을 굉장히 많이 안고 들어갔었는데 한 학기 정도 지나고 나니까
○ 앵 커> 별거 아니네?
● 김금혁> 별거 아니네. 나름 비빌 수 있겠구나. 비빌 수 있는 언덕이 있다. 그리고 이제 저희 동기들끼리 엄청 친하게 지냈는데 그때 그 친구들이 저의 어떤 한국 생활 적응을 정말 많이 도와준 정말 훌륭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장난식으로 그런 말도 합니다. 너는 어떻게 고대를 왔냐. 이런 식으로 이제 던질 정도로 상당히 이제 어떤 사회 적응이라던가 학교 적응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빠르게 됐던 것 같습니다.
○ 앵 커> 두 분처럼 이렇게 정말 강한 의지를 갖고 정착을 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을 계속 쌓아가는 분들도 있는데 또 다른 한쪽에서 보면 왔다가 적응을 잘 못하시고 또 뭐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같은 탈북민한테 사기당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더라고요. 전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그냥 한국을 떠나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분들도 있다. 이런 뉴스를 제가 많이 봤거든요? 실제로 그렇게 두분처럼 다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주변에.
● 김가영> 아무래도 그렇죠.
○ 앵 커> 다시 돌아가는 분들도 좀 있어요.
● 김가영> 돌아가시는 분들 이슈가 된다는 거는 그만큼 숫자가 적기 때문에 이슈화가 되는 거예요. 솔직히 돌아가는 사람의 퍼센트를 따지자고 하면은 정말 0.01%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목숨 걸고 왔는데 돌아가지? 라는 의문점이 생기는데 그 이유 중에 솔직히 우리 그 사람 마음에 안 들어본 이상은 모르겠죠. 하지만, 우리가 같은 탈북민으로 추측해본다고 하면 가장 첫 번째가 저희는 가족에 대한 그런 외로움과 그리움 때문에 가는 거고요. 두 번째는 이 사회 살다 보니까 너무 허무함을 느끼고 내가 너무 허망한 망상을 갖고 와서.
○ 앵 커> 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 김가영> 네. 그런 허망한 꿈을 갖고 왔으면 조금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노력하는 게 없이 그냥 받기만 하겠다고 하면 어디 가든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까, 외로움도 같이 합쳐지면서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저는 하거든요? 가는 이유도 솔직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많은 제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이지만 다 이해 못 합니다. 왜 가지? 그만큼 가는 이유가 솔직히 너무 적기 때문에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된 부분이기도 하죠.
● 김금혁> 저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인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쨌든, 그 사람들은 경쟁이라는 시스템에서 도태된 사람들 아닙니까? 뒤떨어지거나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모두가 다 똑같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제 우리 탈북민 사회라던가 혹은 우리 지역 사회라던가 우리 사회 커뮤니티가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좀 품어줄 수 있는 마지막 안전망 정도는 우리가 조금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지금 현재 탈북민 2030 세대는 상당히 적응을 잘 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에도 많은 친구들이 고등교육 과정을 다 이수를 했고 이제 방송인으로서 강사로서 자기 부분에서 영역을 펼치고 있는데 또 그 2030 세대 안에서도 또 좀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 앵 커> 그럼요.
● 김금혁>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이제는 잘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잘한다고 응원을 해주고 그 사회의 관심이라던가 지원이라던가 이런 부분은 조금 더 포커싱을. 경쟁에서 좀 어려워하거나 뒤떨어진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다음 기회를 줄 수 있는 두 세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그 정도의 역량을 가질 필요가 있다. 라는 생각은 좀 들었습니다.
○ 앵 커> 맞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우리가 조금 더 제도적으로 보완을 좀 해나가야 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두 분 말씀을 너무 재밌게 듣고 있는데 시간이 다 됐습니다. 조만간에 제가 한번 두분 다시 모시고 2탄을 한번 또 준비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너무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금혁·김가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