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 앵커멘트 】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교관으로 꼽히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타계했습니다.
자국 이익과 강대국 사이의 세력 균형을 우선시하는 철저한 실리주의 외교로 냉전시대 국제질서를 재편했다는 평가를 받죠.
한반도 평화와도 밀접한 인물입니다.
장동건 기자가 전합니다.
【 기자 】
미국 외교계의 거목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다 1969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 출범과 함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된 키신저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국무장관을 겸직했습니다.
▶ 인터뷰 : 블링컨 / 미 국무장관
- "키신저 장관은 이 직책을 맡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조언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냉전 시기 이른바 '핑퐁 외교'로 1972년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양국 수교의 물꼬를 튼 건 키신저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 인터뷰 : 왕원빈 / 중국 외교부 대변인
- "키신저 박사는 중국의 오랜 친구이며, 중·미 관계의 개척자이자 건설자였습니다."
같은 해 미국과 구소련 간 전략무기제한협정 협상을 주도해 긴장 완화(데탕트)를 이끌었고, 베트남전쟁 종식에도 이바지하며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 인터뷰 : 키신저 / 당시 미 국무장관 (1977년 퇴임 연설)
- "제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는지 모든 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키신저는 1975년 유엔총회에서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제안하는 등 한반도 긴장 완화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공직에서 은퇴한 뒤에도 수차례 한국을 찾아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르는 당시 정상들을 예방했습니다.
실리를 위해서라면 협상과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 키신저의 외교 철학에는 뜨거운 찬사만큼 냉혈한이라는 비판도 따라붙었습니다.
미국의 베트남, 캄보디아 대규모 폭격과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동티모르와 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대량학살을 묵인했다는 논란도 있었습니다.
20세기 현대사 산증인의 별세 소식에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세계 각계 인사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MBN뉴스 장동건입니다.[notactor@mk.co.kr]
영상편집: 최형찬